(서울=연합인포맥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스마트 열풍이 전임 정권의 '녹색경제'나 '창조경제'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에 기반한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팩토리의 청사진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핵심이 되는 스마트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다.

◇무엇이 '스마트'인가

어학 사전에 따르면 스마트(Smart)는 `1.맵시 좋은,말쑥한 2.깔끔한, 맵시있는 3.똑똑한,영리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다. 사전적 의미를 적용하면 스마트시타와 스마트팩토리 등은 똑똑한 공장 쯤으로 풀이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만 들여다보면 하루빨리 도입해야 할 개념이다. 문제는 도시와 공장에 적용되는 스마트의 임계치가 어느 정도인가에 있다.







<공정마다 제각각인 프로그램 가능 논리 제어장치(PLC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의 통합이 전제돼야 스마트 팩토리 혹은 스마트 시티가 구동 가능하다>



스마트시티와 스마트팩토리의 핵심은 복잡한 작동을 자동화하는 공정제어에 있다. 산업현장에서 적용되는 각종 공정제어의 핵심은 안전이다. 4차산업에서 적용되는 스마트의 핵심도 안전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서 상상할 수 없다. 무인 궤도 자동차나 무인 컨베이어벨트 등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게 스마트의 핵심이다.

전산 프로그램 위주의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팩토리가 헛구호에 그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장과 동떨어진 전산 프로그램 중심의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팩토리는 실제 산업에서 적용되는 안전 규정과 산업기계 작동 노하우가 전무한 실정이다. 코딩 위주의 전산 전공자들은 마이크로 세컨드(microsecond:백만분의 1초) 단위로 수천만건의 데이터가 처리돼야 하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공정마다 제각각인 프로그램 가능 논리 제어장치(PLC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의 통합에 대한 노하우를 전산 전공자들에게 기대하기 힘들다. PLC가 제각각이라는 의미는 공정별로 언어가 영어,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다양화됐다는 의미다. 이를 전산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있는 동일한 언어의 데이터로 가공하는 게 스마트 공정제어의 필수 요건이다. 유비쿼터스 등 전 정권에서 호기롭게 시작한 각종 첨단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쓰레기 수준의 데이터가 투입되면서 결과물도 쓰레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스마트의 핵심은 안전…사람이 상하지 말아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스마트의 전제조건인 안전성에 대한 기준이 체계화됐고 각종 공공부문 입찰에 적용하고 있다. 안전무결성 수준(SIL: Safety Integrity Level) 이 지난 2005년부터 도입돼 각종 공정제어에 적용되고 있다. SIL은 공장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설치될 기계설비의 등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안전계기시스템(SIS)의 무결성을 나타내는 통계기준이다.

표준에 따라 안전무결성 등급이 정의 되고 각각의 등급은 해당 안전장치의 위험스러운 실패에 대한 허용 가능한 수준을 의미한다. SIL의 등급이 높을 수록 안전무결성의 수준도 높아진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 관리의 수준 또한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제전기학회(IEC)가 발표한 IEC 61508에 따르면 4등급으로 나눠진 SIL은 숫자가 높을수록 신뢰성이나 효율성이 높다. SIL1은 10만 시간에서 100만 시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한 안전 수준이다. SIL2는 100만 시간에서 1천만 시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고 SIL3는 1천만 시간에서 1억 시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최고 등급인 SIL4는 1억 시간에서 10억 시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SIL4 수준이면 사실상 안전에서는 완전무결하다는 의미다.

대규모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강릉 열차 탈선 사고 현장에 적용돼야 할 안전기준이 SIL4다. 외국의 경우 SIL4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공정의 3분의 2를 안전관련 제어와 현장을 확인하는 데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을 지키려면 그만큼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스마트'를 왜 하려는 지 성찰해야

'스마트'를 왜 하려는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 제조업 기반의 중소기업들이 스마트하지 못해서 힘든지 자문해야 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스마트한 산업단지가 조성되면 그 과실을 대기업이 또 가져갈 것이라고 자조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결과물인 원가 절감을 대기업이 구매과정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고스란히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IoT(사물인터넷) 등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20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스마트'를 위한 몸부림도 현장에서는 이름만 바뀌어서 숱하게 시도됐다. 스마트는 보이는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대기업과 정부를 상대하는 중소기업의 지위를 의미해야 한다.

동일노동은 동일임금으로 이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체의 지식재산권은 엄중하게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박사급 인재가 대기업에서 연봉 1억원을 받다가 뜻한 바 있어 중소기업으로 옮기면 연봉 5천만원을 받기가 어렵다. 발주처인 대기업과 정부가 하청기업을 갑을의 관계로 인식하고 단가를 후려쳐서다.

사업이행보증제도는 실력있는 업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전년도 매출의 1.5배 이상의 보증을 받을 수 없다. 퀀텀 점프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스마트는 공장이나 도시의 기능이 아니라 경제주체 간의 관계에 중점적으로 적용돼야 4차 산업 혁명을 견인할 동력이 될 수 있다.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발전소에서 꽃같은 젊은이가 또 죽어 나갔다. 벌써 12명이나 같은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스마트는 안전이 핵심 개념이다. 안전을 위한 공정 제어의 핵심은 데이터의 안정적인 수급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핵심을 모르니 4차산업 혁명 정책은 전혀 스마트하지 못한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 (취재부본부장)

neo@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