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미·중 무역 전쟁이 악화하고 20년 이상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무역 전쟁의 본질이 눈앞의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패권 다툼이라는 분석에 근거한다.

4일 현재 이용 가능한 국가안보전략(NSS), 국방전략서(NDS) 등 미국의 전략 보고서들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미국의 일관된 전략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가장 최근의 메시지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10월 연설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각에서 이를 중요성이 떨어지는 신호로 치부하는 것은 큰 실수라는 지적이다.

미·중 무역 분쟁 상황이 악화해서 중국 경기가 본격 하강 국면을 보인다면 한국에는 국가적·경제적 악재지만, 안전자산인 채권에는 호재라는 분석이 나왔다.



◇ '미·중 신냉전' 채권시장 영향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신(新)냉전 수준으로 악화할 경우 한국과 글로벌 경제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다만 안전자산인 채권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위험 기피 심리·국내 경기 악화 때문에 현재 바닥이 막힌 국채 금리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제가 실제로 크게 악화하고 미국 등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원화채 금리는 더 하락할 것"이라며 "한국은행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으니 금리 인하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 분쟁 상황이 악화하면 국내 경기에도 악영향"이라며 "그렇게 되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미국이 내년에 금리를 한 번만 올리는 상황까지 겹치면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금리 하단이 뚫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과도한 중국의 부채 문제와 어울려 중국 금융시스템의 위기가 온다면 한국 채권시장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 부실대출 문제가 한두 건의 디폴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미노처럼 확산하거나 은행 시스템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중국에서의 자본 유출세가 가팔라지면서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고, 이에 따른 원화 약세로 주식·채권을 포함한 국내 금융시장도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펜스 부통령의 '10월 신냉전 선언' 주목

전문가들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10월 허드슨 연구소에서 한 연설이 새로운 냉전 선언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펜스 부통령은 40분가량의 연설 동안 중국에 관해서만 말했다. 그는 무역 전쟁뿐만 아니라 중국의 체제에 대해서까지 강경한 수사를 내놓았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 공산당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과는 일치하지 않는 정책들을 사용했다"며 "몇 가지를 거론하자면 관세와 쿼터, 통화 조작, 강제적 기술이전, 지식재산권 절도, 사탕처럼 나눠준 산업 보조금 등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 절도를 끝내고 강제적 기술이전이라는 약탈적 행동을 멈출 때까지 계속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군사적 확장과 억압적인 체제까지도 거론했다.

그는 "미국의 이전 행정부들은 중국의 자유가 모든 형태로 확대할 것이라는 희망에 이런(중국과의 협력) 선택을 했다"며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고전적 자유의 원칙과 사유재산권, 종교적 자유와 인권의 전체 부분에 대한 새로운 존중을 수반하는 정치적 자유가 확대할 것이라는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이 무역 전쟁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겉으로 보면 무역 전쟁인데 본질은 그렇지 않다"며 "결국 미래 패권 경쟁이고, 한국에서 아직도 이것을 무역 전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매우 큰 전략적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펜스의 연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신냉전 선언으로 봐도 충분하다"며 "무역 전쟁은 중장기적으로 앞으로 20년 이상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양보하기 어려운 중국…'체면 살리기가 최선'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맞서야 하는 중국은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경제력이나 협상력은 미국보다 열세인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정치력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해 시 주석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상태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시진핑 주석은 경제 분야까지 본인이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을 때 정치적으로 큰 리스크가 있다"며 "책임을 본인이 모두 져야 하는 상황이라서 많이 양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힘으로 보면 협상력도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며 "중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미국이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무역전쟁을 미·중 패권 싸움보다는 경제적·정치적 다툼으로 파악했다. 그는 중국이 체면을 살리는 수준에서 무역 전쟁을 봉합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 무역 전쟁 충격이 부채문제와 결합하면…'디폴트 도미노 우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중국이 될 공산이 크다.

무역 전쟁은 이미 중국의 실물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의 지난 11월 소매 판매는 전년 대비 8.1% 증가에 그쳤다. 통계가 나온 이후로 최저치다. 중국 국가통계국 홈페이지는 2000년 통계부터 소매판매의 전년 대비 증가율 수치를 제공한다.

중국의 1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4로 2016년 2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제조업 PMI가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50 이하로 떨어진 것도 2016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 더해 수년 전부터 경고음이 들리는 중국의 과도한 부채문제가 실물 경제의 악화를 계기로 터진다면 디폴트의 도미노라는 재앙이 닥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255.7%로 신흥국 평균(193.6%)을 크게 웃돌았다.

공식적 집계와는 별도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0월 중국 지방 정부의 숨겨진 부채가 최대 40조 위안(약 6천500조 원) 이상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숨겨진 부채 규모가 이처럼 막대한 이유는 중국 지방 정부들이 중앙의 채무 한도 규제를 피해 비공식 부채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들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부채에 기댄 인프라 투자를 해왔고, 이는 중국 곳곳의 유령 도시들을 양산했다.

또 중국의 국영 기업들은 과거 고속 성장 시기 생산 능력을 대폭 늘렸다. 이는 만성적인 공급 과잉과 부실 채무 문제를 초래했다.

중국 국무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중국 국영 기업의 부채는 118조5천억 위안으로 2017년 GDP의 143%에 달한다.

지속할 수 없는 이런 성장 방식은 연쇄 디폴트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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