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문재인 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올해도 추진하기 어려워지면서 금융개혁이 동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시장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갈등의 본질이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점을 들어 정부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금융정책에 대한 확신을 줘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업무보고에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을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여소야대 정치 상황과 어려운 경제 여건 등으로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는 뒤로 밀려있어 올해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준비는 이미 끝났지만, 청와대에서 명확한 시그널을 보여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금융감독 체계 개편은 금융정책과 감독, 소비자 보호 등 세 기능을 각각 분리해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기획위)의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이는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에 흡수·통합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금감원에 일임하는 한편,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만 전담하는 별도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5월 금융개혁파 인사로 분류되는 윤석헌 원장이 취임하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불붙는 듯했으나 정권 초 정부조직개편을 최소화하고 국정안정에 방점을 두기로 하면서 별다른 논의 없이 현상유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 금융정책과 감독 분리를 강하게 주장해 왔으며, 취임 일성으로 금감원의 정체성과 독립성 확립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신년사에서는 독립성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아 공약 사항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도 당분간은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권 초 참여연대 등 진보·시민단체를 핵심 기동세력을 내세워 추진하려 했지만, 국회 통과 등에 진통을 겪으며 방향성을 잃어버렸다"면서 "현재는 성과를 내고 역할을 내보이는 게 중요하지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같은 소모적이고 지루한 과제에 매달릴 때가 아니라는 현실 인식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추진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안 하는 정부의 태도가 금융위와 금감원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에 집중된 금융정책·감독 체계가 이해 상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체제에서 금융감독이 금융정책에 종속돼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게 핵심이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나 가계부채 대응 및 대우조선해양 부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금융위의 금감원 길들이기 논란 등 일련의 상황이 모두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를 의식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로 보고 있다.

금감원 노조도 최근 금융위가 금감원 예산과 조직 축소에 나서자 성명서를 통해 "대통령께서는 금융위 해체 공약을 조속히 이행해 달라"며 금융위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 말 것인지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전략적 모순 상태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보니 정책 추진에 있어 한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며 "확실한 노선이 보이지 않는 이상 금융당국 간 불협화음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정권마다 금융감독이 정책 추진 수단으로만 활용됨으로써 시스템이 훼손되고 오점만 남겼다"면서 "반복되는 조직 간 밥그릇 싸움을 끝내기 위해 금융감독체계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지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