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강수지 기자 =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인 한국에서 외국인 자본의 대거 이탈은 금융위기뿐 아니라 경제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큰 위험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15년부터 정책금리 인상을 시작하고, 급기야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되면서 대외적인 자본 이탈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도 경제성장을 이끄는 반도체 수출이 정점 신호를 보이고, 고용 한파가 더 이어지면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촉매제(트리거)가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외국인 자본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9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경상수지가 큰 폭으로 유지되는 점과 재정 건전성 등을 생각하면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상당히 안정돼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면서도 "예기치 못한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외국인이 연일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코스피 지수가 한때 2,000선을 밑돌기도 하는 등 셀코리아 우려를 키웠다.



◇ 대내보다 대외, 경제보다 정치 이슈가 자본유출 요인

금융시장에서는 국내 보다는 대외이슈, 경제 보다는 정치 이슈가 외국인 원화 자산 이탈을 야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외교 행보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이슈가 영향력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중 무역갈등 진행 상황이나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인한 관계 악화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의장 해임 가능성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왔다.

또한,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 철수령 등 강수를 둘 가능성도 경계했다.

국내 시장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지난 2017년 1월에는 주한 미군이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한국에 있는 미군 가족과 미국 민간인을 실제로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한 내용이 뒤늦게 알려진 적이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셀코리아란 외국인이 원화를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원화 가치의 급락을 가져올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예를 들면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인구 급감을 가져오는 재앙이나 대규모 분식회계로 인한 신인도 하락, 북·미 갈등 심화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나 북미 갈등 심화 등으로 한반도에서 미국인 대피령이 내린다면 금융시장은 급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요인으로는 부동산 가격 급락이나 기업실적·수출 둔화 등 경기 우려 가능성 등이 꼽힌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실적이 전망치 평균을 크게 밑도는 어닝쇼크 수준을 나타낸 점도 이 같은 우려를 키웠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10조8천억 원을 기록하며 전망치 평균인 13조3천800억 원을 하회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4분기 기업실적 전망 하향이나 수출 둔화세 가시화 등 경기 부진 우려가 커지면 증시를 중심으로 외인 자금이 이탈할 수는 있다"며 "다만 펀더멘털 상 이유로는 채권과 주식의 자산간 이동이 많다"고 전했다.



◇ 현실은 이탈 조짐 없어…외국인 채권 잔고 역대 최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 원화 채권 잔고는 2015년 말 약 101조 원을 나타냈다. 2016년에는 약 89조 원까지 떨어졌지만, 2017년에는 약 99조 원, 지난해에는 약 114조 원으로 늘었다.

국내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우려와 달리 그동안 외국인이 보유한 원화채 잔고 2015년 당시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난해에는 외국인 원화채 잔고가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s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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