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성을 능가하는 싱귤래리티(특이점)가 찾아올 것으로 예측한 가운데 그 파도가 좀 더 일찍 들이닥치고 있는 곳이 바로 금융·증권시장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5일 보도했다.

기계와 AI와 이미 주가 방향성을 결정하고 변동성을 키우고 매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간의 존재감이 급격하게 희미해지는 '무인 시장'의 실상을 전했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출렁댔던 지난 연말연시, 싱가포르 고층빌딩에서 야마다 다케주씨는 투자자로부터 쇄도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주문을 컴퓨터를 통해 담담히 처리했다.

야마다씨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빈도매매(HFT) 업체, 플로우 트레이더스의 트레이더로 일하고 있다.

금융청에도 등록된 플로우 트레이더스는 400여명의 직원 가운데 약 40%가 기술 관련 직원이다. 수학이나 컴퓨터를 전공한 20대들이 많다.

야마다씨는 "금융기관이라기보다는 정보기술 기업에 가까울지 모른다"고 말했다.

플로우 트레이더스는 세계 6천500개 종목 이상의 ETF를 중심으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마켓메이킹을 통해 수익을 올린다.

얼마에 사고팔지 계산하는 것부터 가격을 투자자에게 제시하고, 거래를 실행하는 것까지 모두 시스템에서 이뤄진다.

야마다씨는 "기계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플로우 트레이더스의 거래대금은 작년 1~9월에만 6천300억 유로(807조 원)에 달해 전 세계 ETF 시장에서 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투자자들과의 ETF 매매에서 얻는 근소한 가격 차가 쌓여 플로우 트레이더스의 작년 1~9월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이익)는 1억6천600만 유로(2천128억 원)를 기록했다. 연간으로는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마켓메이킹 업무는 과거 증권사가 하던 것으로, 플로우 트레이더스와 같은 시스템을 사용한 HFT 업체가 사람 손에 의지하는 거래를 빠르게 차지하고 있다.

시장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이 HFT라면 주가 방향을 정하는 것은 AI펀드다.

신문은 미국 구인자 수, 호텔 예약 건수 등 지금까지 투자정보가 되지 않았던 얼터너티브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투자에 활용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한 데이터 조사회사는 작년 11월 GM이 공장 폐쇄 등 구조개혁안을 공표하기 전에 회사의 인력 채용이 80% 감소했다는 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GM 주가는 구조개혁안 발표 후 급등했다. AI펀드는 구인자 수 등의 새로운 데이터를 사전에 입수·분석해 주가 방향성의 변화를 노린다.

이와 같은 가격 변화를 증폭시키는 것이 모멘텀형 펀드와 상품투자고문(CTA) 등 트렌드 추종 세력들이다.

신문은 미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ETF인 '아이셰어즈 엣지 MSCI 미국 모멘텀 팩터 ETF'를 주목했다.

이 ETF의 작년 말 순자산 규모는 79억 달러(8조8천764억 원)로 5년 전에 비해 40배 늘었다.

모멘텀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처럼 주가 모멘텀을 자동적으로 추종해 종목을 교체하는 ETF다. 10일 시점으로 가장 많이 편입된 종목이 아마존닷컴이다.

이와 같은 투자기법은 한때 '모멘텀 운용'이라고 불리며 헤지펀드들이 전문적으로 구사하던 것이다.

해당 기법이 ETF로 탄생하면서 누구나 투자할 수 있게 돼 규모가 크게 확돼됐다. 이번 연말연시 증시처럼 주가의 진폭이 커지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과 헤지펀드 리서치에 따르면 인간이 지시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은 지난 2017년 1천800조 엔(17조 달러, 약 1경8천조~1경9천조 원)에 달해 글로벌 운용 총액의 21%를 차지했다.

신문은 현재는 해당 규모가 2천조 엔에 달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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