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공공기관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고사시키는 갑질의 원천이라는 원성이 일고 있다. 공공기관이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원천 소스코드까지 요구하고 있어서다. 일부 공공기관은 소프트웨어의 지식재산권까지 요구하는 등 해당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밑천 내놓으라는 공공기관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부 공공기관은 특정 사업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발주하면서 향후 확장 등을 위해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은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 및 핵심 기술을 확보해 두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영세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이 폐업하거나 파산할 경우가 잦아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영세업자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공공기관이라는 원성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공공기관의 이같은 입장은 국내 개발 업자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공기관이 컴퓨터의 운용체계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납품받으면서 윈도우 OS(operating system:운영체계)를 내놓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목청을 돋웠다.

공공기관의 이같은 갑질 문화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은 빠른 속도로 고사하고 있다. 뛰어난 인재들이 획기적인 소프트웨어를 의욕적으로 개발하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공공기관의 갑질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게임회사의 태도와 너무 닮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게임업체들은 터무니 없는 가격 산정 등으로 어플리케이션 개발 하청 업체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게임업체들을 4차 산업의 주역으로 보고 집중 육성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게임은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가 산정도 후려치기…악덕 업자 수준

특히 정책 당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본보 2018년 8월20일자 '4차산업 혁명 뿌리가 흔들린다' 참조> 정부가 납품받는 소프트웨어 단가 산정 체계도 우수한 인재를 고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관공서 납품의 경우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개발자의 숙련도 창의성에 대한 평가 내용은 전무하다. 어떤 툴을 어디에 쓰느냐는 평가만 존재한다. 보정 계수도 고정된 탓에 아무리 우수한 소프트웨어라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개발자 인력의 숙련도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정한 단가 이상을 받을 수 없다. 그나마 실제 입찰에 들어가면 정부가 정한 단가의 60% 수준을 지급받는 데 그친다.

◇코딩이 소프트웨어 산업이라고 착각하는 당국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네이버나 카카오톡 등의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코딩으로 전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정부 부처에 대한 협상력이나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업체들이 관련 물량을 독식하고 있다. 실제 실력이 있는 지 여부를 검증할 능력이 정부 당국에 없어서다.

21세기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은 코딩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수학적 혹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도록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가 왜(why) 나타났는지 알고 무엇(what)을 어떻게(how)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 당국과 공공기관이 코딩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구분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4차산업 육성정책도 제 궤도를 찾을 수 있다.(취재부본부장)

neo@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