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수탁자책임 원칙)가 연초부터 국내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다음달 1일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를 열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져서다.

재계와 일부 학자 등은 소튜어드십 코드 등에 따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두고 이른바 '연금사회주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해외 투자 경험이 풍부한 서울 금융시장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 시스템(이하 캘퍼스: Calpers)이 운용하는 '포커스 리스트 프로그램(Focus List Program)'에 따르면 대한항공 경영진은 벌써 교체됐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정당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한항공 주가 일봉 차트>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이고,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 7.34%를 확보한 3대 주주다. 다음 달에 열리는 기금위가 대한항공을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대상으로 지목하면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 재선임 안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에 대한 이사해임 제안, 사외이사 추천 등을 통해 경영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재계는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과도한 경영권 개입과 기업의 자율성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연금사회주의로 흐를 개연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금의 수익성도 악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해외에서 자산을 운용한 경험이 있는 모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연금사회주의라면 포커스리스트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캘퍼스가 그 장본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캘퍼스는 1987년부터 포커스리스트프로그램을 활용해 왔다. 매년 지배구조 등에 문제가 심각한 기업의 명단과 지적사항 등 개선돼야 할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본보 2018년 5월14일자 '한진그룹과 '캘퍼스의 포커스리스트' 기사 참조> 캘퍼스가 이 리스트를 발표할 때마다 증시가 요동쳐 '캘퍼스효과'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캘퍼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1999년부터 모두 188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포커스리스트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자문사인 윌셔는 캘퍼스가 개입한 포커스리스트프로그램 기업들 실적이 러셀 1000지수 편입 기업들보다 15.27%나 높았던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기업들은 러셀 1000의 섹터지수에 비교해서도 11.90%나 아웃퍼폼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연금사회주의를 부추긴다는 일부 전문가의 주장을 일축하는 결과다. 캘퍼스는 이사회의 역량과 다양성,지배구조,독립성 등 지속 가능성에 연관된 이슈에 집중해서 포커스리스트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ESG:Environment- Social-Governance)에 대한 기업보고서의 투명성 등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의결권 행사와 감독 조건 등 주주의 권리에 대한 부분도 캘퍼스는 적극 개입한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나 마름처럼 행동하라는 위탁이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일 뿐이다.

우리는 주주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의미다. 주주가 주식을 맡긴 마름 혹은 집사에게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라는 촉구는 자본주의의 본령에도 부합한다.

재벌 2세와 3세 등이 한 줌도 안 되는 지분으로 주인 행세를 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대는 지났다. 캘퍼스의 포커스리스트 기준이면 대한항공 경영진은 벌써 퇴출됐어야 마땅하다. 현 경영진은 '땅콩회항'과 '물잔투척'을 포함해 국적기를 밀수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주주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연금사회주의라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연기금인 캘퍼스가 그 장본인"이라는 모 금융인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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