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강수지 기자 =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배경이었던 물가 움직임이 연초부터 심상치 않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와 국제유가 급락에 1월 소비자물가는 1년여 만에 1%대를 밑돈 0.7% 상승률을 나타냈다.

서울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7일 경기와 물가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가 사실상 끝난 것으로 풀이했다.

특히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올해 물가안정 목표 수준(2%)과 큰 차이를 보인 만큼 물가를 둘러싼 정부와 시장의 눈치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통계청은 유가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1%대의 안정된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어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은도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과 물가 전망을 하향 조정했지만, 이로 인해 금융시장의 기대가 금리 인하로 번져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한은은 올해 물가 하방압력 요인으로 유가 하락과 무상교육 확대, 전·월세 가격 안정세 등을 꼽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정점을 찍은 후 급락한 유가가 가장 큰 물가 하방 요인으로 꼽혔다.

유가 하락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원유 수요 둔화 우려, 미국 원유 생산 호조 등 수급 요인이 컸다. 여기에 유가 하향 안정화를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의지가 완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1년간 서부텍사스유(WTI) 가격 추이(단위:달러)>

한은은 지난해 2월 해외경제포커스에서 유가 전망을 다루며 유가 상승이 장기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제의 성장 모멘텀 강화와 달러화 약세가 유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지만, 미국 셰일오일 증산과 유가 상승에 따른 실질 구매력 약화로 하방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시 60달러 중반에서 등락하던 유가는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10월에는 76달러를 넘어서며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경제전망 당시만 해도 한은은 유가가 올해 초까지 강세를 유지하다 하반기에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원유 재고가 큰 폭으로 늘어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 방침을 내놓으며 유가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상황이 급변하면서, 한은도 국제유가 하락이 물가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한은은 지난 10월 배럴당 76달러로 봤던 원유도입단가 전제치를 세 달여 만에 64달러로 낮췄다.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는 지난 1월 경제전망 설명회에서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에 유가 전망치가 중요하다"며 "지난해 10월 유가 전망치를 76달러로 봤는데 지난 연말부터 유가가 급락해 10달러 이상 하락했다"고 말했다.

한편, 주요 선진국도 경기와 물가 우려에 긴축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금리 인상에 대한 관망 기조를 강화한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일본은행(BOJ) 등도 물가 부양 등을 이유로 완화정책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지난해 10월 이후 유가가 갑작스레 하락하고 각종 경제지표가 부진했던 점이 전망 하향의 이유였을 것이다"며 "국내기관 중에서는 한은이 최근의 이슈를 반영해 정기적으로 전망을 한다"고 전했다.

그는 "한은이 물가 전망을 하향할 줄 알았지만, 하향 정도는 당시 시장 예상보다 큰 폭 조정이었다"며 "유가 환경이 급변하면서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주요국도 기준금리 상황을 관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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