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개인의 부채는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다. 빚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14일 성균관대학교 한 강의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부채의 '인적 무한책임'을 주목하며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물었다.

이날 한국경제학회에서 주관하는 2019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 참석한 그는 서민금융 포럼의 특별세션에 참석해 '가계부채를 중심으로 한 부채의 인식과 대응'이란 주제로 30분 가까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대출 계약이 연체로 이어지면 채권자와 채무자는 권력적인 주종관계로 바뀐다"며 "채무자의 정상적인 경제, 사회생활을 방해할 뿐 아니라 심리적이고 인격적인 파멸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이미 선진국을 필두로 다수의 국가가 늘어나는 가계부채에 대비해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율을 강화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채권자의 추심 방법을 법률로 제한하고, 경제적 사망 개념을 도입한 개인 파산제도도 소개했다. 우리나라처럼 법률로 이자율 상한을 규정하는 나라도 많다고 언급했다.

최 위원장은 추심의 가혹성과 잔인성을 지적하며 이들에 대한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사적으로 협력적 생산 관계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지주와 농민 관계, 자본가와 노동자 관계, 현대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대립적 긴장 관계로 변질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관여를 통해 사회안정을 유지해 온 것이 인류 공통의 지혜다"고 역설했다.

최 위원장은 개인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우리나라의 법리적 노력도 소개했다. 외환위기 당시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을 부활하고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한 사례, 이후 제정된 대부업법과 공정채권 추심법도 언급했다.

현재도 부채에 대한 규율체계는 형성되는 중이라 다양한 법률의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과 모럴해저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판을 매번 마주해야 했다.

이날 최 위원장은 상환 가능성이 낮은 차주에게 돈을 빌려주고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인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꺼냈다.

소외계층의 금융 접근성 문제와 맞물려 상반된 인식이 혼재된 난해한 주제라고도 했다.

그는 최근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차주의 신용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과정에 향후 이들이 상환을 위해 얼마나 큰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될지를 측정하는 감당 능력을 주목한 것을 언급했다.

최 위원장은 "영국의 사례에서처럼 가계부채를 과거 금융거래 이력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 차원에서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채무자 측면의 장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며 "소득 수준으로 감당하기 힘든 빚에 대해 빌려준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시각을 우리 규율체계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되풀이돼온 모럴해저드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나태와 방종이 아닌 실업과 질병 등 우발적 요인에 의한 채무불이행은 공동보험의 형태로 사회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사회적 안전망이다"며 "생산구조에서 배제된 인력이 다시 경제 활동에 복귀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채무조정에 대한 금융기관의 행태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최 위원장은 "위탁 추심과 채권매각을 통한 회수에 주력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실채권을 털어내고 신규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하는 것이 건전성 관리나 수익 측면에서 이득이 될지라도, 어제의 고객에게 오늘 등을 지는 것은 냉혹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적발이 어려운 불법 사금융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금융당국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금융당국은 라이선스를 받은 금융기관에 한정해 불법 사금융에 대한 조사와 조치만 가능하다"며 "새로운 권한과 절차를 신설하기 어렵다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활용해 금융당국이 피해자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최 위원장은 강연의 말미에 채무에 대한 규율 체제를 지속해서 정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기능을 더 키우기 위해선 부정적인 효과를 차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이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1천500조를 넘어선 만큼 부채를 다루는 시각에 대한 다방면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다만 마땅히 있어야 할 규율에 공백이 있었던 만큼 균형된 시각에서 새로운 규율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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