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 적립 상황을 수십년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 뒤늦게 오류를 발견하고 대규모 과태금을 부과한 것이 드러나면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

한은은 지급준비금 적립과 관련한 관리·감독 권한이 없고, 뒤늦게라도 오류를 발견해 법에 따라 과태금을 부과한 것인 만큼 문제 될 게 없다는 궁색한 입장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KEB하나은행 이외에 다른 은행이나 금융기관 등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은이 지나치게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말 하나은행에 외화예금 지급준비금 부족을 이유로 157억 원의 과태금을 낼 것을 통보했다.

하나은행이 옛 외환은행 시절인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간 외화예금 지급준비율을 잘못 산정해 지급준비금을 규정대로 쌓지 않은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서 대규모 '벌금'을 물린 것이다.

하나은행은 최저 2~7%의 비율로 지급준비금을 쌓아야 했지만 외화예금 분류 잘못과 전산상 입력 오류 등의 이유를 들어 최저 1% 수준을 적용해 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하나은행의 이러한 오류를 한은이 20년 동안이나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은은 장기간 그러한 오류를 왜 발견해 내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주기적으로 은행 등을 대상으로 공동검사를 진행하는 등 은행 업무 전반에 대해 들여다볼 기회가 적지 않다.

정기적인 점검 등을 통해 신경을 썼더라면 얼마든지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20년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제대로 된 관리, 점검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지급준비금을 산정해 적립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기본 업무다"며 "금액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한 것은 금융회사의 문제이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은은 지급준비금 산정과 적립 등에 대한 감독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온전히 금융회사가 책임을 져야 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책무와 의무를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은은 금융전산망을 통해 개별 금융회사의 지급준비금 상황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지급준비금 적립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통상적 수준의 점검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든지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통화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금융회사들의 자금 흐름 상황을 한은이 제대로 파악을 하고는 있느냐는 지적이다.

한은은 과거에도 금융회사들의 자금·채무 상황에 대한 통계 오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망신을 산 경우가 있었다.

지난 2017년 3월에는 '1월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9천775억 원 늘었다고 발표했다가 4시간 만에 실제 증가액은 5천83억 원이라고 정정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저축은행중앙회가 한은에 보고한 가계대출에 기준변경 등으로 영리성 자금 등을 새로 추가했지만 한은은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증가액을 실제보다 많이 계산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2015년 12월~2017년 1월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 수치를 3월에 내놓은 것과 다르게 발표했다.

제2금융권이 기타대출로 분류해야 할 상품을 주택담보대출로 잘못 분류했는데, 한은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통계에 반영한 것이다.

한은은 제2금융권이 수정 제출한 2015년 12월 이후 14개월 치 수치 자료만 수정했고, 이전 통계는 오류를 정정하지 못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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