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상징으로 꼽힌다.

지난 12월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것은 단순한 무역전쟁의 일부분이 아닌 중국의 첨단기술 주도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미국은 동맹국에게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그리고 글로벌 각국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1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2000년대 초·중반만해도 국제적인 인지도가 미미했던 화웨이가 어떻게 글로벌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보도했다.

지난 2004년 이전만 해도 유럽의 통신업체들은 화웨이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고 따라서 잠재적인 공급업체로 여기지도 않았다.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화웨이 소매사업 부문 유청둥 대표가 2004년 네덜란드의 소규모 통신사업자 텔포트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3G 네트워크 구축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텔포트는 화웨이와 거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텔포트는 또 기지국에 필요한 장비를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난제에 직면해 있었다.

유럽시장 진출이 절실했던 화웨이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당시 무선네트워크 부문 부사장이었던 유 대표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유럽의 소규모 팀을 꾸려 자국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했다.

그들은 수 주 만에 설치 공간을 적고 운영 비용이 싼 기지국을 구축해냈다.

깊은 인상을 받은 텔포트는 몇 개월 뒤 2억3천만 유로(약 2천928억 원) 상당의 10년 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화웨이에 도약의 발판이 됐다.

화웨이는 이듬해 BT그룹과 계약을 했고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보다폰의 공급업체가 됐다.

화웨이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텔포트가 문을 열어줬다"며 "BT, 보다폰과 계약한 이후 화웨이가 유럽 전역에서 받아 들여졌다"고 말했다.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이 근면함과 고객의 요구 충족에 집중한 점도 성공의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 2008년 5월 쓰촨성에서 규모 8의 대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대피할 때도 화웨이 엔지니어들은 흔들리는 언덕 위에 임시 통신 장비를 구축했다.

화웨이는 연구개발에도 상당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현재 직원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R&D에 종사하고 있으며 회사의 연간 R&D 예산은 많게는 200억 달러(22조5천억 원)에 달한다. 이는 경쟁업체 3곳의 R&D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현재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며, 해외 시장에서 약 1천억 달러(112조6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년 3분기 기준으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28%로 2015년에 비해 4%포인트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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