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정책결정권자가 성장과 고용 등에서의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금융안정 달성을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 위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일 발표한 '거시건전성 관리에 있어 단기 성과 중심 정책 결정의 위험성' 보고서에서 "그간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핵심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어 현행 거시건전성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KDI는 2008년 3분기 713조원이던 가계부채가 지난해 3분기에는 1천514조원으로 급증해 소득증가세를 크게 상회했다면서, 그간 수많은 경고와 정부 대책에도 총량 측면의 가계부채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11년 6월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매년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잦아들지 않으면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DI는 가계부채의 구조개선과 취약·한계 차주의 구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가계부채 총량 증가로 가계 전반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KDI는 특히 거시건전성 정책은 신용 활동과 실물경기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정책 추진과정에서 큰 저항에 직면할 수 있는데 단기적인 성장과 고용 효과를 선호하는 정책결정자의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돈줄을 죄는 방식의 정책 추진이 생산과 고용 등 실물경기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고 대중적 지지를 얻기 힘든 측면이 있어 가계부채 총량 규제 등의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KDI는 실제 1997∼1998년 외환위기와 2003∼2004년 카드 사태 당시 정책결정권자가 단기 성장률 및 내수부양을 우선시하면서 금융위험 확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이 급격히 팽창할 때도 경제성장률 둔화에 대응한 내수활성화 정책 기조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압도했다고 진단했다.

KDI는 대통령·국회의원·지방 선거 등 짧은 주기의 정치 사이클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고 봤다.

선거에서의 당선에 대한 강한 선호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눈앞에 둔 성과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써 정책 시계를 단기화하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KDI는 "단기 성과에 대한 선호가 정책 결정 과정에 크게 반영될수록 중·장기적인 시계에서 사회 후생 증진을 위한 정책, 특히 거시건전성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향후 거시건전성 관리체계는 정책 결정 시계의 단기화 경향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정책 기관의 책임성과 운영상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한 판단과 정책 집행을 분리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유관기관 간 견제와 균형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사결정권자의 법적 재임 기간을 보장하고, 필요하다면 장기화하는 한편, 규제·감독권자의 법적 책임성도 높이자는 논의도 있다고 소개했다.

상위 결정권자에 대해서는 이연보상제도 등을 도입함으로써 중·장기적인 정책 성과를 중시하도록 유인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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