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한때 감소하던 '마이너스 금리' 국채 잔액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채권을 만기까지 갖고 있더라도 투자 금액보다 받는 돈이 줄어드는 '마이너스 금리' 국채에 수요가 쏠리고 있는 셈이다.

18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에 따르면 글로벌 국채 가운데 마이너스 금리 채권의 발행 잔액 비율은 지난 1월 중순 현재 22%로, 지난해 10월 19%에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부터 작년 9월까지 계속 감소하던 기조가 뒤바뀐 셈이다. 당시만 해도 유럽은 수출 증가 속에 성장세가 이어졌다.

마이너스 금리 국채가 늘어난다는 것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채권을 사야 할 정도로 투자 수요가 몰린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선진국의 경제 부진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초저금리의 국채라도 매수 수요가 이어진다는 얘기다.

칼라마오스 인베스트먼트의 매트 프룬드 공동 CIO는 "유럽이 완전한 수렁에 빠졌다"며 "오랫동안 이야기되던 상당한 역풍으로, 이제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 성장이 계속 둔화하는 데 따라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2월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해 잠재적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추가 재정 부양에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5년 만기 독일 국채는 지난해 4월만 해도 0.03%에서 거래됐으나, 최근 -0.4% 근처로 추락했다.

ECB는 통화정책 정상화라는 목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경기를 제한적으로 부양하는 은행 대출 프로그램 재개를 검토 중이다. 드라기 총재의 임기 만료로 정책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동시에 정치권 불안도 이어진다. 포퓰리즘 운동 속에 유럽 내 국가 간 갈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탈리아는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 증대를 유럽연합(EU)에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의 시모나 모쿠타 이코노미스트는 "성장을 위한 금리 인하가 채권시장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실물 경제는 반응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ECB는 지난 2014년 6월 처음으로 예금금리를 0% 밑으로 인하했다. 그 뒤로 추가 인하를 거쳐 현재 -0.4%까지 내려갔다. 예금금리 인하로 기업과 소비자가 돈을 은행에 방치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WSJ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보유하는 것은 단순한 은행 예치로 0.1%의 추가 비용에 직면한 기관 투자자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나, 보험사는 자산 만기를 부채와 맞추기 위해 채권이 필요하다.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은 최근 오스트리아와 핀란드의 5년 만기 마이너스 금리 국채를 매입했다.

이 운용사의 존 테일러 채권 매니저는 "현재 가격대의 매수자는 만기까지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갖고 있다면 손실을 보지만, 수익을 내며 거래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채권 포트폴리오의 낮은 수익률은 투자자에게 연금 저축이 원하는 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보내준다"며 "그들은 이에 따라 소비를 더욱 줄이게 된다"고 관측했다.

테일러 매니저는 "이것은 중요한 부분"이라며 "중앙은행 정책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고 더욱 깊은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길어질수록 사람의 행동도 더욱 많이 변화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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