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미국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베팅하는 자금이 6년 만에 순유출로 돌아섰다. 경기 성장과 인플레이션 부양에 대한 채권시장의 회의론이 더욱 커진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3일(현지시간) 글로벌 펀드평가사 리퍼(LIPPER)에 따르면 미국 인플레이션 위험을 분산하는 상품인 슈와브 美 TIPS 상장지수펀드(ETF)는 분기 기준으로 지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순유출로 돌아섰다.

채권시장의 인플레이션 상승 베팅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의미다.

향후 10년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보여주는 손익분기인플레이션(BEI)은 1.95%로, 연준의 물가 목표치 2%를 밑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저점보다는 반등했으나 여전히 지난해 5월 기록한 4년 만의 최고치 2.18%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더욱 많은 채권 투자자가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물가 상승세 둔화는 경기와 기업 실적 전망이 더욱 악화한다는 또 다른 신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경기 전망은 최근 제조 활동과 소비 지출, 기업 신용 등이 악화하며 더욱 불투명해졌다. 경기 열기가 식으며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2% 물가 목표치도 7년 연속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펜 뮤추얼 자산운용의 지와이 렌 매니저는 "나도 의구심이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라며 "물가연동국채를 지난 2017년 매수했으나, 작년에는 매수를 줄였고 올해도 아마 많이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7년은 모두가 동조화된 글로벌 성장을 이야기하는 등 좋은 해였다"며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은 모든 지표가 경기 둔화를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여러 시장 설문에서도 이런 심리는 나타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지난달 시행한 설문에서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은 응답자 55%가 내년에 성장과 물가가 추세를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응답 비율은 지난 2016년 12월 이후 최고치였다.

경기지표가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실업률은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이어가고, 임금도 전년 대비 6개월 연속 최소 3% 이상 상승했다. 지난주 나온 4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WSJ은 "과거에는 이런 재료들, 특히 낮은 실업률은 투자자에게 인플레이션 기대를 촉발했지만, 이제는 노동시장의 긴축도 연준의 물가 목표치 달성에는 충분치 않다"고 평가했다.

노동조합의 세력 약화와 기업 세계화 등이 물가를 계속 잡아두는 원인일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보고 있다.

연준은 저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목표치 산정 방식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공개 토론을 통해 수년간의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로 설정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기 침체기에 물가가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호황기에 의도적으로 목표치 2%의 상향 돌파를 허용하는 것이다.

경기 둔화기의 디플레이션 위험을 줄이고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성장 지속의 자신감을 제공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다소 끌어올리는 셈이다.

보야 투자운용의 매트 톰스 CIO는 이에 대해 "매우 비둘기파적인 개념으로, 연준이 즉각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연준의 대응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연준은 내년 초순까지는 어떤 변경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BOA에 따르면 뮤추얼펀드와 ETF를 추적하는 주식 자금은 최근 가파르게 유출됐지만, 채권 자금은 올해 들어 최근까지 순유입을 보였다. 이런 흐름은 시장이 경제 성장에 확신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방기금선물시장은 올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20%까지 보고 있다.

렌 매니저는 "연준은 인플레 기대 심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시장은 그들이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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