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진우 기자 = 오늘날의 두산그룹 기틀을 닦은 '침묵의 거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두산그룹은 지난 3일 저녁 박 명예회장이 별세했다고 4일 밝혔다. 향년 87세.

박 명예회장은 1932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해 참전용사로 활약했다.

군 제대 후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귀국한 뒤 1960년 산업은행 공채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그룹에 발을 들였고, 이후 한양식품 대표,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친 뒤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인화를 중심에 둔 경영으로 오늘날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하고 대단위 팀제를 시행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지난 1994년에는 직원들에게 유럽 배낭여행 기회를 제공했고, 1996년 토요 격주 휴무 제도도 시행했다. 여름휴가와 별도로 리프레시 휴가 제도를 택하기도 했다.

동양맥주 재직 중이던 1964년에는 국내 기업에서 생소하던 조사과라는 참모 조직을 신설해 회사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 예산 편성,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던 현대적 경영체계를 세우기도 했다.

두산그룹 출신의 원로 경영인은 "바꾸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새로운 경영기법이나 제도가 등장하면 남들보다 먼저 해보자고 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두산그룹에서 '혁신'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 그는 경영위기를 타개하고자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33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22개로 감축했고, 이 과정에서 주력이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체질 개선을 이어갔다.

두산그룹은 이를 발판으로 2000년대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며 소비재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그는 재계에서 침묵의 거인으로 유명하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었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서 자기 뜻은 짧고 간결하게 전했다.

사업적 결단의 순간 때도 그는 실무진 의견을 먼저 듣고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한 번 일을 맡기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랫동안 지켜보는 그를 두고 두산그룹 지원은 침묵의 거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에 대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에서 박 명예회장은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는 언젠가 직접 운전을 해서 회사로 출근한 적이 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한 것이다. 주차장에서 이를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박 명예회장은 '야구광'이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도 최초로 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맞잡기도 했다. 2008년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은 그는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 지원(두산중공업 회장), 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등 2남 1녀가 있다.

j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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