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윤교 기자 = 금융당국이 잇달아 보험 약관 개선에 나서면서 보험업계는 난감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7일 보험 약관 순화 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보험 혁신안을 내놓은 데 이어 금융위원회도 약관 순화 작업에 착수했지만, 업계에서는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 '보험약관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는 이달 말까지 금감원·보험협회·보험개발원·소비자단체 등 유관기관에 약관 순화와 관련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보험사 중심으로 작성된 보험 약관이 너무 길고 복잡해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가 마련 중인 방안에는 앞서 금감원에서 내놓은 보험 혁신안과 달리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 사안도 포함된다.

앞서 금감원은 '보험산업 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 권고안 중 우선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보험 약관 순화 위원회를 운영해 표준약관의 구성과 용어를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고치고 3년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용자 테스트'를 실시해 문제점을 지속해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험사 스스로 약관을 심사하는 자율심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연달아 약관 손질 작업에 나서면서 보험업계에는 거부감이 감돈다. 약관 순화가 소비자들에게 절대 선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어서다.

우선 약관 순화로 인해 오히려 보험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부터 나온다. 보험 분쟁은 대부분 약관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해석이 모호하거나 불명확한 경우에 발생한다. 약관을 풀어쓰면 의미의 선명성이 떨어져 이러한 경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약관이 어려운 이유는 법률·의학 용어가 많기 때문인데 이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문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고쳐 쓸수록 소비자들이 그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해 오히려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간 분쟁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약관의 양도 문제다. 약관을 쉽게 풀어쓸수록 약관의 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 약관의 내용도 수백 쪽에 이르는 책 한 권과 같은데 이를 풀어쓰면 그 양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보험계약자들이 약관의 양에 질려서 약관을 안 읽는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보험 약관에 나오는 법률·의학 용어를 순화한들 범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채 보험 약관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를 새롭게 만들어내 또 다른 혼란을 만들어내는 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용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고치면 이번에는 약관을 살피는 변호사나 의사들이 풀어쓴 용어의 뜻을 해석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yg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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