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금융당국이 대형가맹점 갑질을 처벌하겠다고 경고한 지 하루 만에 쌍용자동차가 가맹점 수수료를 내려달라고 카드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의 경고가 무색해지면서 카드사들이 현대·기아차 협상 실패에 따른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정부의 카드 수수료체계 근간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쌍용차는 전일 신한·삼성 등 카드사에 공문을 보내 이번 주 내로 새로운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25일부터 카드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카드사들은 지난 1일부터 쌍용차에 대해 기존보다 0.1~0.14%포인트 인상된 수수료율을 적용, 약 1.97~2.0%대 초반의 수수료율을 받고 있다.

쌍용차는 카드수수료 인상 폭을 현대차 수준으로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최근 현대차 반발에 당초 통보한 수수료 인상 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8% 중반대에 협상을 마쳤다. 쌍용차도 현대차에 줄여준 수수료 인상 폭만큼 조정해 달라는 것으로, 기존보다 0.04%~0.0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앞서 지난 18일 한국GM과 르노삼성도 같은 이유로 카드 수수료율 재협상을 요구한 바 있다.

문제는 쌍용차의 계약해지 통보가 금융당국이 놓은 지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수수료 협상을 둘러싼 대형가맹점과의 갈등이 커지자 지난달에 이어 19일에도 진화에 나섰다.

윤창호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카드사와 대형가맹점 간 수수료율 협상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형사고발 등 엄중히 조치하겠다"며 "처벌 수위가 약하다고 판단한다면 추후 법 개정을 통해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대형가맹점이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카드사에 낮은 수수료를 강요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관련 법규는 대형가맹점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할 경우 징역 1년 또는 벌금 1천만원 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이례적 경고에도 카드업계와 대형가맹점 간 협상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카드업계 안팎에서는 이를 계기로 금융당국의 적격비용 산정 체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은 2012년 여신금융전문법 개정을 통해 3년마다 재산정하고 있지만, 대형가맹점 수수료율을 재산정한 대로 인상할 수 없는 등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대형가맹점과 원만하게 협상이 진행된 바 없고 결국 곪았던 것이 터진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항상 개별협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발 물러서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앞으로 마트, 통신사, 항공사 등 대형가맹점과의 협상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제 당국의 힘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며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 증명된 만큼 제도 개편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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