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노현우 기자 =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정부의 물가 정책 위험성을 경고했다.

21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지난달 정례회의에서 "최근 물가 흐름의 약화에는 거시 경제적인 요인 이외에 관리물가의 정책적인 상승 억제도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국민의 생활안정 지원을 위한 관리물가 억제정책이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이라는 다른 효과를 수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는 누적된 관리물가 상승압력을 어느 정도 해소해 전체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에 가깝게 상향시키는 것이 거시경제의 안전관리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며 정부의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이러한 조언은 최근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나왔다.

금통위 회의 전 발표된 지난 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0.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전월 대비로는 0.1% 하락했다.

2월에도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5% 상승하는 데 그쳐, 둔화세가 심화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면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하락,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 물가 하방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또 하나의 하방 요인으로 추가되는 셈이다.

기대 인플레는 향후 물가가 어느 정도 오르겠다고 경제 주체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말한다.

기대 인플레가 낮아질 경우 기업은 상품 가격과 임금을 올리지 않고, 투자를 연기한다. 가계도 소비를 줄이는 등 연쇄 작용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을 비롯한 대부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타켓팅을 통해 기대 인플레를 목표 수준에서 안착시키려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기대 안착과 인플레 지속성' 제목의 워킹 보고서에서 향후 인플레 경로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기대가 잘 안착하지 않을 경우, 일시적 물가 충격이 소비자 가격 결정 과정에 더욱 오랫동안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또 이를 되돌리기 위해선 더욱 강한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기대 인플레가 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재는 경기침체가 지속해서 이뤄지는 등 디플레에 가까운 상황이다"며 "기대 인플레가 낮아지면서 경기침체를 가속화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기대 인플레가 낮아지는 가운데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기 때문에 이런 괴리에서 오는 문제가 같이 있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 운용역은 "가계부채 등 금융 불안 요인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저물가를 근거로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며 "금통위원이 정부의 물가 정책 변화를 주문한 건 그만큼 통화정책 여지가 작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hwr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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