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일본은행(BOJ)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완화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으로 돌아서는 동안 일본은행은 저물가를 이유로 선제적 정책 지침(포워드 가이던스)을 제시하고 장기물 국채 금리의 변동폭 허용치를 소폭 완화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정책 변화의 폭이 작았기 때문에 다른 중앙은행들처럼 '극적으로' 완화 기조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도 완화 흐름에는 동참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일본은행이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목표에 미달한다면 추가 완화를 고려한다고 밝혔고 글로벌 경기 둔화 흐름이 일본으로 전이될 수 있어서다.

특히 일본 정부가 예정대로 오는 10월 소비세를 올린다면 일본은행은 소비 둔화 등으로 일본 경제가 받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완화 카드를 쓸 것으로 예상된다.

◇숨통 트인 일본은행

지난해부터 일본은행이 '궁지에 내몰렸다'는 평가가 일부 나왔던 것은 주요 중앙은행이 긴축으로 선회한 가운데 완화 정책을 고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연준이 작년 4개 분기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ECB도 작년 12월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동안 일본은행은 단기 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고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폭을 기존 0.1%~-0.1%에서 0.2%~-0.2%까지 허용하는 선에서 이들과 보조를 맞췄다.

그런 만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주요 중앙은행이 완화 기조로 되돌아서면서 일본은행은 숨통이 트였다고 생각할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 눈치를 보지 않고 물가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완화 기조를 밀어붙일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과 달리 일본은행은 지난 몇 년간 글로벌 경제가 상대적으로 건강할 때에도 결코 공식적으로 긴축에 나선 적이 없었다"며 "이제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더욱더 긴축에 나설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은행이 글로벌 완화 기조에 활용해 추가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더 많아졌다.

이달 초 외신이 이코노미스트 4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에 나서며 정책을 수정할 것으로 예상한 응답자는 40%에 가까웠다. 이는 지난 1월 설문조사의 18%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도카이 도쿄리서치센터의 무토 히로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연준과 ECB의 비둘기 변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올해 중반 글로벌 경기가 악화하면 일본은행은 어쩔 수 없이 엔화 강세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도 지난달 정례 금융정책 결정회의 이후 엔화 강세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이르지 못하거나 경기 하방 리스크가 현실화한다면 통화정책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ANZ는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 조치를 고려하는 면에선 임계점에 가까워졌다고 본다"며 "완화 정책의 틀을 재조정하는 등의 방안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추가 완화 어떤 방식일까

지난 2월 구로다 총재는 마이너스 단기 금리를 인하하거나 장기물 국채 금리의 통제 목표치를 '0%' 이하로 내리는 방안,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거나 본원통화의 확장 속도를 올리는 방식 등 네 가지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 가운데 일본은행이 단기 금리를 더 낮추되 장기물 금리 목표치는 그대로 둘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신문은 "10년물 금리는 이미 -0.2%까지 움직이도록 용인되고 있는 만큼 굳이 수정할 가능성은 작다"며 "단기 금리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다만 마이너스 단기 금리가 더 내려가면 일본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더 악화할 것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일본의 저금리 정책으로 일본의 시중 은행, 특히 지방 은행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닛케이는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폭을 늘리는 한편 은행주와 연동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방안이 헤지펀드 업계에서 거론된다고 전했다. 은행주 주가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막겠다는 생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BAML)의 이즈미 드발리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추가로 부양 카드를 쓸 여력이 많지 않다"며 "기준금리 인하 같은 대폭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발리에 수석은 대신 일본은행이 뚜렷한 정책 기조의 수정 없이 채권매입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추가 완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은행은 이번 달 정례 금융정책 결정회의에서 연간 80조엔 규모의 자산매입 목표치를 유지한다고 되풀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12개월간 일본은행의 채권매입량이 36조엔에 불과했다.

 

 


◇소비세 인상, 신호탄 되나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에 나서는 시점은 의견이 다양하지만, 일본 정부가 소비세를 올린 이후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일본 정부는 오는 10월 소비세를 기존 8%에서 10%로 인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소비세 인상을 강행할 것이며 예상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재정 부양책도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소비세가 인상되면 단기적으로 일본인들의 소비가 줄어들 수 있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일본은행의 정책 목표와 배치되는 상황인 만큼 일본은행이 추가 완화로 충격을 빨아들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라다 유타카 일본은행 정책위원은 이번 달 연설에서 소비세가 인상되면 경기침체가 유발되고 물가 상승세가 약해질 것이라며 그럴 경우 통화완화 정책을 망설임 없이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소비세 인상과 추가 완화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하라다 위원과 달리 구로다 총재는 앞서 기자회견에서 소비세 인상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 내 일부는 소비세 인상이라는 이벤트보다는 엔화 가치가 급격히 강해지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행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JP모건증권은 "추가 양적완화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100엔을 돌파할 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닛케이는 "소비세율 인상의 영향은 아직 미지수"라며 "일본은행은 소비세 인상에 앞서 실제 정책을 조정하는 대신 선제 지침 문구를 수정함으로써 추가 완화 의지를 먼저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으론 글로벌 경기가 더 악화하면 아베 정부가 소비세 인상을 미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MBC닛코증권의 마키노 준이치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기 둔화 신호가 나오면서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 시기를 미루는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며 "일본 정부가 소비세 인상을 강행한다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추가 부양책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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