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진우 기자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수세에 몰렸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주요 외국인 투자자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하면서 이사회를 통한 직접적인 경영 참여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9시 강서구 대한항공빌딩에서 주총을 개최할 예정이다.

재계의 관심사는 제3호 의안으로 올라온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의 건(임기 3년)이다. 조 회장이 사내이사가 되려면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절반 이상만 동의하면 되는 다른 상장사보다 까다로운 규정이다.

분위기는 조 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인 한진칼(29.96%)에 이어 2대 주주인 국민연금(10.57%)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의 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조 회장은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를 결정했다"고 전날 밝혔다. 조 회장이 총 274억원 규모의 배임ㆍ횡령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것을 겨냥한 것이다.

지분 24% 정도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의 반발도 감지된다. 세계 5대 연기금 가운데 하나인 캐나다공적연기금(CCPIB)과 미국 플로리다연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반대표를 던질 예정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반대' 권고하면서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의 마음을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무산된 것도 ISS 권고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가 반대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라면서 "조 회장 연임의 건을 지지할 외국인 투자자는 사실상 제로('0)라고 보면 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미 한진그룹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투자자가 모두 반대만 해도 조 회장은 사실상 사내이사직을 연임하기 힘들지만, 암초는 더 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과 서스틴베스트 등도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 투자자가 일반적으로 국민연금 또는 이들 자문기관의 의견을 수용하는 탓에 조 회장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소액주주의 위임장을 받고 있다는 점도 조 회장에게 악재로 평가된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대표이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물러나게 된다. 세계적인 항공사를 만드는 데 주력한 총수가 사실상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셈이다.

대형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그룹 회장으로서 이사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경영자라는 꼬리표로 따라다닌다는 것이 조 회장에게 매우 불편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대한항공도 국민연금의 결정에 크게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가치마저 무시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j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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