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의 반대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결국 사내이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이후 기업 총수가 물러난 첫 사례여서 국민연금의 시장 역할론이 더욱 커지게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국민연금 반대로 이사 연임 실패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은 1999년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의 11.56%를 가진 2대 주주며,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대한항공 지분의 33.35%를, 외국인 주주가 20.50%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6일 대한항공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했고, 조 회장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27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조 회장은 현재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되 대한항공은 제외하기로 결론 내렸으나, 대한항공 이사 연임 반대는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아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 조양호 퇴진 성공에 시장 '파수꾼' 입지 강화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반대 의결권 행사 비중을 높여왔으며,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까지 해 시장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109조원에 달하는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본격화하면서 시장 '파수꾼' 입지는 더욱 공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연금의 주인인 국민 등의 이익을 위해 주주 활동에 책임성을 부여하는 원칙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른 시장 영향력 확대가 '연금사회주의'라는 지적도 있지만, 경영진 사익추구와 횡령, 배임 등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외 연기금 사이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와 사회책임투자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은 포커스리스트 프로그램을 활용해 매년 지배구조 등에 문제가 심각한 기업의 명단과 지적사항 등 개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서명했다.

연기금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해외 연기금 사이에서 대세며 국민연금도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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