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가계의 부채와 저축에 대한 통계적 점검이 시급해졌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신흥국 평균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강제저축성 연금자산도 급속하게 늘고 있어서다. 강제저축성인 연금자산은 지출로만 계상되면서 가계의 부채와 저축률에 대한 통계적 착시의 빌미가 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7.9%로 전년의 94.8%보다 3.1%포인트나 늘었다. 신흥국 평균인 37.6%를 크게 웃돈 규모다. 글로벌 가계부채의 GDP 비율이 같은 기간 0.2%포인트 상승한 것과도 비교하면 우리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너무 가파르다.



◇대책을 세우려면 현황부터 파악하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려면 현황 파악이 우선이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부채(가계대출+판매신용)는 2018년말 현재 1천534조6천억원으로 전년말보다 5.8% 증가했다. 증가세는 2013년(5.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됐다. 하지만 가계의 순처분가능소득 3.9%를웃돌았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가장취약한 뇌관으로지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계부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기획재정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선제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당국이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위기를 지나치게 확대 재생산할 필요도 없다. 원래 위기는 자기실현적 성향이 강해 위기라고 자꾸 되뇌면 진짜 위기가 심화될 수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의 저축률을 의미하는 개인순저축률은 2017년 기준으로 7.6%에 이른다. 2011년에는 3.4% 수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후 가계의 저축률은 소폭 반등한 뒤 정체상태를 보인 반면 연금지출은 꾸준하게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금지출액은 전년대비 10%나 늘었다. 연금지출이 그만큼 늘었으니 가처분 소득을 구축(crowding-out)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가계 부채를 악화시키는 데도 일조한 셈이다.



◇베이비부머 퇴장 앞둔 연금은 미래의 가처분 소득

연금은 정부 입장에서 부채의 성격이 짙지만 가계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가처분 소득이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 가계의 저축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지만 베이비부머 퇴장과 맞물리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강제 저축의 성격인 연금이 가처분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의 퇴장과 함께 연금지급이 본격화되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다시 늘어날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만 650조원에 이르고 퇴직연금도 190조원을 웃돈다. 사회부담금에서 사회수혜금을 제외한 순사회부담금 요인을 제외하면 2010년 기준으로 3.9% 수준인 가계저축률이 11.0%로 무려 7.1%포인트나 급등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가계부채비율도 당시 기준으로 155.4%에서 142.5%로 개선되는 것으로 진단됐다. 가계저축률을 구축(crowding-out)하는 순사회부담금은 2020년 22조1천억원으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진단됐다.

연금지출을 고려하더라도 가계부채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호들갑 떨 필요도 없지만 방심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당국은 물론 가계와 기업 등 각 경제주체들은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서둘러 세워야한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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