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국내 한공업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지난 20년간 대한항공을 이끌었던 조양호 회장이 향년 70세의 나이로 8일 별세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이날 새벽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운구 및 장례 일정·절차를 향후 전달할 계획이다.

조 회장은 1949년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메사추세츠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후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또 1996년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과 2014년부터 IATA 전략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거치며 국제항공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조 회장은 이 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를 바꾸며 한진그룹을 이끌어왔다.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는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하는 결단도 내렸다.

또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 등의 여파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던 2003년에는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기도 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 간의 경쟁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도 예상했다.

지난 2008년 7월 진에어를 설립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뒷받침됐다. 현재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이에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또 한진해운의 회생을 위해 2014년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진해운이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에는 청산 절차를 밟게 됐기 때문이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아울러 거듭된 오너가의 '갑질'로도 큰 곤욕을 치렀다.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에 이어, 지난해에는 차녀 조현민 전 전무가 '물벼락 갑질'로 물의를 일으켰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를 받았다.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절차 논란 속에서 연임을 반대했고,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연임 반대를 요구하면서 조 회장은 결국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하는 위기에 내몰렸다.

다만,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50주년을 이끌며 리더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9년 출범 당시 8대였던 항공기는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현재 43개국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같은기간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천500배, 4천280배로 늘었다.

한편, 조 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전 일우재단 이사장·70세)씨를 비롯 아들 조원태(대한항공 사장·44세)씨, 딸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45세)·조현민(전 대한항공 전무·36세)씨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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