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지난달 29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차량 공유업체 리프트는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비상장기업)의 올해 첫 주자인 리프트의 시가총액이 상장과 동시에 약 222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상장 첫날 종가 기준으로 역대 IT 기업 중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거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피아트크라이슬러, 우리나라 현대차의 시총에 육박하는 대단한 수준이다.

이로써 2007년에 리프트를 만들었던 올해 34세의 공동 창업자는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리프트 덕분에 우버(Uber, 차량공유), 슬랙(Slack, 사무용메신저), 핀터레스트(Pinterest, 이미지 공유) 등 대기 중인 기업공개(IPO) '대어' 유니콘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기대까지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이번 IPO 과정에서 미소를 지은 인물이 또 있다. 리프트의 가치를 미리 알아본 칼 아이칸이다. 투자자보다는 기업사냥꾼이란 수식어로 더 유명한 아이칸은 2006년 우리나라 KT&G를 공격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행동주의 펀드'의 대표주자다.

아이칸은 리프트의 IPO를 앞두고 가지고 있던 리프트의 지분 2.7%를 공모가 수준에 매각했다. 단번에 손에 쥔 자금만 5억5천만 달러, 4년 전 그가 사들일 때 투자한 돈은 1억 달러였다. 4년 만에 5배가 넘는 큰돈을 벌었다.

그동안 아이칸은 주식을 산 뒤 기업을 압박해 주가가 오르면 바로 팔아 '먹튀', '벌처펀드'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 리프트 주식만큼은 상대적으로 장기 투자를 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15년, "향후 도시화 확산 추세를 고려할 때 리프트가 5~10년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던 아이칸의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리프트 초기 지분 투자에 1억 달러를 '베팅'한 것도, IPO 이전 재빨리 지분을 정리한 것도, 아이칸의 '살아있는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투자에 대한 탁월한 배짱과 감각을 지닌 아이칸의 나이가 올해로 83세라는 점이다. 큰돈이 오가는 이 피 말리는 싸움을 그는 '노장'이지만 여전히 잘 해내고 있다.

아이칸으로부터 리프트의 지분을 5억5천만 달러에 사 간 조지 소로스의 나이도 화제다. 그는 아이칸보다 5살이 많은 88세로,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LLC의 창업자이다.

성장성에 비해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IPO 이후 180일간 팔 수 없는 보호예수 기간이 있는데도 소로스는 리프트에 베팅했다.

이번 리프트 지분 거래는 오고 간 자금 규모를 볼 때 '오너'인 아이칸, 소로스가 직접 주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 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월가의 거물들이다.

왕성했던 과거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여든 살을 훌쩍 넘긴 현재에도 왕성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수명이 점점 짧아져만 가는 요즘 월가의 세태와는 크게 대조된다.

아이칸은 애플까지 변하게 했던 인물이다. 기업가치가 극히 저평가돼 있다는 아이칸의 지적에 애플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적극적인 주주환원 프로그램에 나섰던 적이 있다. 소로스의 증시를 향한 '쓴소리' 역시 여전하다.

월가에는 전설이지만 여전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인물들이 꽤 있다.

'투자의 귀재'이자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버핏의 평생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인 찰스 멍거 부회장은 아직도 투자 전면에 나선다.

버핏은 올해 주주 서한에서 "주식 투자를 확대하고, 대규모 인수를 고대한다"며 "88세와 95세의 나이에도 나와 찰리의 심장은 빠르게 뛰게 한다"고 말했다.

올해 공식적으로 은퇴 소식을 알렸지만, '채권왕' 빌 그로스의 나이는 74세이다. 74세에도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현직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다. 그로스는 앞으로 자녀들과 함께 가족 투자회사를 끌어나갈 예정이다.

오는 8월 말 은퇴할 예정인 미국 주가지수의 전설로 불렸던 데이비드 블리처 S&P 다우존스 지수 위원회 회장은 70세다.

블리처 회장이 같이 전설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던 뱅가드의 잭 보글 회장 역시 89세의 일기로 별세하기 전까지 투자자문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시대의 변화를 잘 읽고 빠르게 대처하는 젊은 펀드매니저들이 월가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흔히 있다. 그러나 투자의 세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란, 필수적으로 오랜 세월을 동반해야 하고, 특히나 젊은 매니저들에게는 부족한 부분이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이런 '구루(guru)'들이 여전히 월가에서 살아남는 이유다. (곽세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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