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권용욱 기자 =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채권 거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람코는 지난 9일(현지시간) 마감된 첫 회사채 발행을 통해 무려 120억 달러를 조달했다. 채권시장의 주문 규모만 1천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 파이낸셜리뷰는 16일 "크레디트시장의 비효율성이 완전히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크레디트시장은 주식시장을 항상 한발 앞서간다는 통념이 생겼다. 크레디트시장이 우려를 내비치면, 즉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상승하면 뒤이어 주식시장에도 우려가 퍼져 증시 매도세가 시차를 두고 촉발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이런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듬해인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붕괴했고 9월에는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졌다.

매체는 이를 크레디트 시장의 경고가 옳았던 사례로 꼽았다.

이어서 "크레디트 시장이 증시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통념을 불식시키는 사례도 많다"며 "그들은 사실 비효율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꼬집었다.

크레디트 펀드 중 일부는 구조적으로 시장의 가격을 잘못 활용하도록 설계됐다는 게 파이낸셜리뷰의 설명이다.

매체는 "크레디트 투자자는 본질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에 종사하지만, 서로 간에 격리된 대규모의 자본금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예를 들어 국채 펀드 규정에는 오직 국가 자산의 투자만 허용한다"고 전했다.

고금리 채권 펀드는 '짜릿함'이 더해진 정크 등급만 취급하기도 한다.

기업에 대출하는 은행들은 자체적인 내부 리스크 통제와 자본 비용 등에 속박되어 있다.

격리성의 존재가 가격의 비효율성으로 이어진다는 게 파이낸셜 리뷰의 분석이다. 예를 들어 투자등급 채권이 정크로 강등되면 펀드 매니저 일부는 강제적으로 매도자가 된다. 소위 '추락한 천사'라고 불리는 채권들은 사실상 가격의 의미가 사라지는 셈이다.

매체는 "은행은 종종 대출에서 엄격한 자본 비용에 구속받는다"며 "'파이어 세일(fire sales)' 가격에서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을 떨어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소위 '벌처 펀드(vulture fund)'의 투자 기회를 만들어낸다. 벌처 펀드란 부실 자산을 싼값에 사서 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내는 투자 신탁 기금이다.

이번 아람코의 채권 발행도 전후 사정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시가총액이 1조 달러에 이르고 작년에만 순이익이 1천110억 달러를 웃돌았다. 이는 유명 에너지 기업인 엑손, 셸, 쉐브런, 토탈, 비피 등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파이내셜리뷰는 "흥미로웠던 것은 아람코의 회사채 금리"라고 진단했다.

아람코의 10년 만기 금리는 미국 국채보다 100bp 이상 높았고, 실제 소유주인 사우디 정부채 금리보다 낮았다.

이에 대해 스트래튼 스트리트의 엔디 시먼 채권 매니저는 "이런 일은 이례적이지만 전례가 없지도 않다"며 "아마도 국채 투자가 허용되지 않는 회사채 투자자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세계 어느 기업보다 수익성이 좋은 회사가 제시한 금리 수준에 회사채 투자자가 큰 매력을 느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이번 발행은 같은 신용등급이나 품질을 가진 기업들보다 저렴하게 발행됐다"며 "이런 불균형은 고금리 국채를 좇는 신흥국 채권 펀드보다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등급채권 펀드에 더욱 많은 자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ywk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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