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Research and Development) 사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예산 지원 등이 기초 및 응용 과학기술 부문 등에만 집중된 탓에 실질적인 국가 경쟁력 향상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서다. 인문·사회분야는 국가 차원의 R&D 사업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예고하고 있지만 인문·사회분야는 사업 후보군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절박함을 바탕으로 인문사회과학 지원하는 이웃 나라 일본

일본은 올해부터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른 진흥시책 대상에 인문·사회과학을 포함시켰다. 인문 사회과학 수준 향상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1995년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은 일본 과학기술정책의 근간이 되는 법이다. 일본 정부도 그동안은 이 법안에 따라 과학기술을 진흥시키면서도 인문·사회과학은 지원대상에서 제외했다. 우리가 학문 체계를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관행도 과학기술기본법 등을 바탕으로 R&D 사업을 지원했던 일본의 영향이 컸다.

과학 기술 강국인 일본은 절박함을 바탕으로 인문·사회과학 부문을R&D 사업 지원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4차산업 혁명기를 맞아과학기술만으로는 지평을 넓혀가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의료부문까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윤리적 법적 한계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가 부족한 실정이다.

◇'K 컬처' 강국 자부하는 '문송해'의 나라 한국

K 팝과 한류 드라마 등 'K 컬처'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의 인문사회과학 부문 종사자들은 이웃 일본이 부러울 뿐이다.우리의 인문사회과학 부문종사자이 직면하는 현실은 암담하다. 문과라서 죄송해라는 의미의 문송해라는 자조적 신조어까지 유행할 지경이다.

예컨대 각종 컨텐츠의 보물 창고인 우리나라 고전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올해 초 국회 토론회에서 소개된 '고전번역 활성화를 위한 인력양성 정책연구' 등에 따르면 향교와 지역 문중이 보유한 민간자료는 목록화 작업도 진행되지 않아 고전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계획하고 있는 문집,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특수고전 등 전체 1만2천884권의 번역률은 16.8%(2천165권)다. 실록 번역본의 현대화 작업은 2017년 기준으로9.9%(861권 중 85권)에 불과하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에 등재된 승정원일기는 번역률이 13.9%(4천772권 중 663권)에 불과하다.

◇인문사화과학도 SOC다











우리는 인문사회과학이 돈으로 연결되는 현상도 목격하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신작 앨범을 바탕으로 빌보드차트 등 전세계 음원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페르소나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배우들이 배역에 해당하는 가면을 쓰고 무대에 나와서 역할을 한 데서 파생된 용어다. 인문과학의 한 갈래인 미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도 디오니소스 축제와 페르소나다. BTS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가 미학을 전공했다는 점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BTS는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주창한 페르소나를 상업적으로 활용해 K 팝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의 힘이다. 이쯤 되면 인문사회과학도 사회간접자본(SOC)로 볼 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R&D를 '인간·문화·사회를 망라하는 지식의 축적 분을 늘리고 그것을 새롭게 응용함으로써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모든 활동'이라 정의하고 있다.추경 사업편성을 고민하는 기재부 관료들이 새삼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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