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연이라 하기엔 타이밍이 절묘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한국은행 통화정책 기조도 명확하게 완화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제언하고서 한달 남짓 기간 정부와 한은의 정책 스탠스가 확 바뀐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IMF 한국 미션단의 권고는 지난달 12일에 나왔다. 추경 편성은 이에 앞선 지난달 초부터 언급되기는 했지만, 미세먼지 대응이 추경 사유에 해당하는지 찬반 의견이 갈리던 터였다. IMF 권고가 나오면서 추경 편성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는 데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스탠스 변화는 더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18일 열린 4월 금융통화위원회는 비둘기파(dovish) 성향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 2월 말 열린 직전 금통위 때와는 180도 달라진 스탠스다. 무엇보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통방문)에서 그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다.

4월 통방문을 보면 '금년중 GDP 성장률은 1월 전망치(2.6%)를 소폭 하회하는 2%대 중반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나왔다. 직전 2월 금통위 통방문의 '국내 경제의 성장흐름이 지난 1월 전망경로와 대체로 부합할 것'이란 문구가 삭제되면서 금통위가 경기 둔화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해석됐다.

특히 4월 통방문에서 '완화 정도 추가 조정 여부' 문구가 삭제된 것이 결정타였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한은이 금리인상 깜빡이를 껐다"고 해석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통방문 문구 변화 등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은 총재 멘트보다 금통위 전반의 뉘앙스 변화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21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축소 조정할 것이란 현재 통화정책 방향에 변화가 없느냐는 물음에 "아직은 아니다. (통화 완화 정도를) 어느 정도 조정할지는 모든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변했다.한은 총재의 이 발언이 나오고 불과 3주 만에 열린 금통위에서 관련 문구 자체가 사라졌다. 이 총재는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펼쳤지만, 통방문 문구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놓고 보면 시장이 금리 인하 기대를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시장이 너무 앞서간다고 탓할 일은 아니란 얘기다.

정부와 한은의 달라진 스탠스가 오롯이 IMF의 권고에서 비롯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국내 경기 부진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호주중앙은행(RBA) 등의 통화정책 스탠스도 한층 완화적으로 변신 중에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더 많은 영향을 줬을 거라 보지만, 연례협의차 잠시 방한하는 IMF 미션단의 정책 제언이 우리나라 당국의 스탠스 변화에 앞서 항상 선제적으로 나온다는 건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로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주저앉은 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 의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IMF의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는 맞아떨어졌고, 정책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은의 스탠스는 엇박자였던 것도 모자라 너무나도 느슨했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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