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강성부의 공성과 조원태의 수성
[데스크 칼럼] 강성부의 공성과 조원태의 수성
  • 고유권 기자
  • 승인 2019.04.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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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소위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 '한국기업지배구조'를 뜻하는 영문 '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앞자리를 딴 행동주의 사모펀드다. 작년 11월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 9%를 사들였다. 경영 참여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저 시세차익을 노리는 '듣보잡' 펀드 정도로 치부됐다. 한진 오너가의 일탈적 갑질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점을 파고들었다는 얘기도 파다했다.

조양호 회장이 지난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급작스럽게 별세했다. 12일 서울로 운구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장례는 16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졌다. KCGI는 침묵했다. 언론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하겠다는 의도였지만,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KCGI는 지난 24일 한진칼 지분을 종전 12.80%에서 14.98%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한진칼은 이사회를 열고 고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한진그룹 회장으로 전격 선임한다.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 만에 '외형상'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신속히 마무리 지었다. KCGI의 추가 지분 취득과 조원태의 회장 선임. 앞으로 간단치 않은 싸움이 벌어질 조짐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온 강성부는 이력이 참 특이한 사람이다. 과거 대우증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강성부가 초년병 시절부터 다뤄온 주제는 기업 신용분석이다. 크레디트 명가로 유명했던 동양증권으로 옮긴 이후 여의도에서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명성이 자자했던 윤영환·길기모·류승화와 같은 1세대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의 틈바구니에서 기업지배구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2005년 처음으로 발간한 100대 기업의 지배구조 보고서는 대박을 터트렸다. 매년 업데이트되면서 발간된 이 보고서는 기관투자자에게는 필독서가 됐다. 2012년 그가 신한금융투자로 자리를 옮길 때 동양증권은 그 보고서만큼은 가져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면서 신경전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강성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강성부는 2015년 '선수'로 뛰어들기 위해 사모펀드에 합류했다. 3년 만에 그는 대한민국 최대 국적 항공사를 가진 기업의 경영권을 뒤흔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강성부는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후진적이어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과도한 사익추구 행위,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주주 무시 행위 등이 모두 오너를 중심으로 한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러면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문화'를 만들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돕는 '도우미'가 되겠다고 강조한다. 문화와 도우미. 행동주의 펀드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온건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간단치 않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치고 빠지지 않겠다는 얘기다. 펀드에 돈을 댄 전주(錢主)들이 그만하라고 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한진그룹 새 회장에 오른 조원태는 "선대 회장님들의 경영이념을 계승해 한진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 중심 경영과 소통 경영에 중점을 두겠다"고 했다. 새로운 자리에 오르는 수장들이 늘 하는 얘기다. 하지만, 조원태의 우선순위는 후자에 있어야 한다. 고 조양호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직을 추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조치들이 선행돼야 한다. 물컵 갑질 이후 연이어 터진 한진가 가족들의 각종 일탈 행위들에 대한 불신은 이미 켜켜이 쌓여 한방에 걷어내기 힘들 정도가 됐다. 한진의 위기가 신뢰의 위기인 이유다. KCGI와 국민연금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들은 무의미해 보인다. 과감하게 문을 열어 제쳐야 한다. 선대 회장의 경영이념을 계승하기 위해 소통을 하는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선대 회장의 경영이념을 계승해야 한다. 올해 1월 KCGI가 한진칼에 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요청한 제안서를 찬찬히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조원태에겐 과감한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한진도 살고 조원태도 살 수 있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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