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국내 면세점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면세점 사업에 진출한 지 불과 4년 만에 첫 번째 이탈자가 나오면서 한화를 시작으로 이른바 승자의 저주가 본격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0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전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오는 9월 '갤러리아면세점 63'의 영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면세점 사업권은 2020년 말이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1천억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특허권을 반납하기로 한 것이다.

갤러리아가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7월 제주공항 면세점이 임대료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적자가 이어지며 영업을 조기 종료했다.

◇빗장 풀어준 정부…출혈 경쟁에 맥 못 추는 대기업

한국의 면세점은 법 특성상 관세청에 특허라 불리는 지점별 운영허가를 받아야 한다.

2013년까지는 기존 10년 운영 후 형식적인 절차만 밟으면 자동 연장이 되는 사실상 독점 구조였지만, 중국 단체관광객이 대규모로 한국에 몰려오면서 정부는 신규 면허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결과 2015년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 당시 블루오션을 잡기 위한 대기업들의 '면세점 대전'이 벌어졌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각종 특혜 비리에 얼룩진 진흙탕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한화와 함께 신세계면세점(신세계DF), HDC신라(현대산업개발+호텔신라), 두타면세점(두산)·SM면세점(하나투어)이 새롭게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뒷말이 무성했다.

이에 정부는 이듬해인 2016년 4월 서울 시내 면세점 4곳을 추가로 내주기도 했다.

시내 면세점 수가 6개에서 13개로 3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하면서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고객 선점을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해외 관광객 증가로 면세점 매출은 급증했지만 그만큼 단체관광객 유치를 위한 송객수수료 등 지출도 늘어나면서 매년 적자 늪에 허덕였다.

추경호 의원실이 관세청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8곳 시내면세점이 여행사·가이드 등에 지급한 수수료는 1조3천181억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여행사와 가이드에 지급한 리베이트, 중국 보따리상(따이공)이나 개별 여행객에게 주는 선불권 등은 포함되지 않아 이를 합산한 실제 수수료는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만 바라보고 면세점 사업을 확장하거나 신규 진출한 면세점들은 예상치 못한 중국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면서 "기형적인 현재의 수익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다 해도 역마진을 견뎌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갤러리아 나올까

이번 한화의 철수가 시내면세점 사업 철수의 연쇄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다른 면세점들도 한화와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신라·신세계 등 빅3의 틈바구니에서 신규·중소 사업자가 자리 잡기는 특히나 어렵다.

SM면세점은 2017년 275억원, 지난해 13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인사동 시내면세점과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이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영업장을 확장해 매출이 증가했으나 적자경영은 지속하고 있다.

시내면세점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최근엔 6개 층인 매장을 2개 층으로 축소했으며, 지난해에는 모기업인 하나투어가 지난해 300억원 자금을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두타면세점은 지난 3년간 영업적자가 6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지만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동화면세점은 2016년 124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한 데 이어 2017년에도 약 2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지난해 신규 진출한 현대백화점면세점도 지난해 418억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내년 흑자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업계는 영업적자가 더 장기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서울 지역 시내면세점 추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면세점을 중심으로 이탈자가 1~2곳 더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대형 면세점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연쇄 사업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올해 흑자전환 등 재무구조 개선 여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룹 차원에서 면세점 사업에 대해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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