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나름 잘 나가는 은행이라면 월가에 지점 하나쯤은 있다. 월가에 있으려면 월가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월가에 지점을 둔 은행들은 늘 긴장 속에서 뉴욕 금융감독청(DFS)의 눈치를 보고 산다.

뉴욕은 전 세계적으로 자금세탁방지제도(AML) 시스템을 가장 철저하게 검사하는 곳이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벌금까지 '때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객확인제도, 의심거래보고, 고액현금거래보고 등 내부시스템은 물론이고, 인력 규모 등 컴플라이언스와 관련된 모든 것을 들여다볼 정도로 검사 강도가 세다.

2014년 BNP파리바가 이란 등 제재 대상국과 거래한 사실이 적발돼 대규모 벌금을 문 것을 비롯해 도이체방크, 크레디스위스 등 유럽계 대형 은행 뉴욕지점들도 이에 앞서 줄줄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2017년 말에는 농협은행 뉴욕지점이 AML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한국계 은행 중 처음으로 DFS로부터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월가는 냉정했다. 과태료 수준이 농협 뉴욕지점의 연간 수익을 훌쩍 넘는 수년 치 규모였다.

DFS는 한국계 은행들을 대상으로공통으로 경고했다. 자금세탁방지 인력, 비용, 의사결정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었다.

한국계 은행들은 바빠졌다. 서둘러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를 채용했고, 시스템 개선을 위한 컨설팅에도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다. 이제 자금세탁방지 경계령은 심각한 현실이고, 뉴욕지점은 물론 국내의 은행, 감독 당국 등 모두의 경각심은 배가됐다.

그리고 1년여 뒤. 다시 DFS 검사 시즌이다.

최근 농협은행 뉴욕지점이 과태료 징계 이후 처음으로 약 두 달간의 합동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농협은행 뉴욕지점 전후로 한국계 은행들의 검사도 이뤄진다.

통상 개점 5년차까지는 매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뉴욕 DFS가 합동 검사를 한다. 그 이후부터는 두 기관이 번갈아서 하는데, 제재조치를 받으면 개점연한에 관계 없이 매년 합동 검사를 받아야 한다.

시류는 그렇다. 결국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시스템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자금세탁 관련 인원 확충에도 나서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우리 금융권은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턱없이 부족하다. 차츰 국내에도 전문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관련 일자리도 계속해서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공신력 있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아직은 없다. 국제 공인으로 미국 '자금세탁방지전문가(CAMS·Certified Anti-Money Laundering Specialist)' 자격증이 있다. 미국자금세탁방지 전문가협회(ACAMS)가 발급하는 CAMS는 공인재무분석사(CFA)와 같은 국제 전문자격증이다.

ACAMS는 2001년 9·11테러 사건을 계기로 테러 지원자금과 자금세탁 규제 중요성이 부각되자 2002년에 설립된 단체다. 2003년부터 자금세탁 방지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CAMS 자격시험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교육을 이수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춰 국제 공인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CAMS 자격증을 보유했다면 자금세탁 방지에 관한 지식을 쌓았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농협은행 뉴욕 지점장이 현직 지점장 1호로 CAMS를 취득했고, 최근에는 신한은행 뉴욕 지점장도 이 자격증을 땄다. 이런 흐름을 타고 국내에도 관련 연수, 수험 준비 과정들이 생겨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자금세탁방지 법규와 검사 중요성이 커져 컴플라이언스 담당자 등 관련 전문인력 뿐만 아니라 이런 인력을 채용하고 관리감독 해야하는 지점장 등 경영진들에게도 전문지식과 역량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은행들은 CAMS 자격증 취득은 물론 관련 협회 등 네트워크 활동까지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급증하면 몸 값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자금세탁방지 국제 기준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고, 국제 기준에 맞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곽세연 특파원)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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