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임기 중 별다른 과업을 하지 않아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인 기관장이 있는가 하면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관장도 있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은 후자에 속했다.

기업지배구조원장을 맡은 지 3년. 20여명에 불과했던 조직은 그동안 40여명으로 커졌다. 임기 초부터 조 원장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한결같이 밀어붙였다. 이제는 명실공히 기업지배구조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퇴임을 한 달 앞두고도 그의 하루는 정책세미나와 업무 협약 등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남의 돈을 굴리는 사람은 꼭 갖춰야 하는 부분입니다. 기업은 변하려고 하는데 연기금, 자산운용사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식이 점점 달라져야 합니다"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큰 잡음을 내지 않으면서도 한결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짐작케 했다.

조 원장(1964년)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프랑스 그랑제꼴 ESSEC를 거쳐,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대 오웬 경영대학원 조교수를 했고, 1997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 대한민국 국회 입법자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2016년 5월부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조명현 원장과의 일문일답.



-임기초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속적으로 맡아왔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우군이 없었다. 개념 정립부터 기업, 기관투자자 각각의 생각이 달랐고, 시민단체도 도입안을 보고 약하다고 평가했다. 재정위원회 회의를 여덟번 했는데 네번은 이해관계자들도 불러서 같이 의논하면서 입장을 조율해왔다. 지금은 거의 90여 곳이 가입돼 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기업, 기관투자자들 각각의 입장이 다를 것 같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투자자들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고 해서 투자자와 건설적 대화를 할 것을 강조한다. 한 예로 현대자동차가 지배구조 개편하면서 많은 것을 겪었다. 현대차도 지속적으로 기관투자자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한 결과 이번 주총에서 온건한 펀드들이 엘리엇보다 현대차 편을 들어줬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파트너십 코드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과 적대적 M&A를 방어할 방안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액티비스트(행동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는 도움이 됐다. 사람 일이 그렇다. 평소에 연락도 없다가 어려울 때 도와달라고 하면 누가 도와주나. 평소 대화를 해 온 기업이라면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기관도 그렇다. 돈 들고 귀찮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작년에 밀라노에서 국제기업지배구조연대(ICGN·International Corporate Governance Network)'에 참석한 적이 있다. 블랙록 부회장이 키노트 스피치를 할 때 충격받은 게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인 신인 의무(fiduciary duty)를 펀드매니저 뿐 아니라 일반 직원, 자동차 운전기사에도 강조한다고 했다. 남의 돈을 굴리는 사람은 꼭 갖춰야 하는 부분이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over and over and over'라는 말을 쓰면서 신인의무를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사들이 과연 그럴까. 처음에 신인의무를 교육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로 할지 의문스럽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서 교육도 해야 하니 귀찮을 수 있지만 꼭 해야 하는 기본 의무다. 기업은 변하려고 하는데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변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 점점 달라져야 한다.



-국내 기업문화나 투자에 큰 변화가 될 것 같은데

▲올해 1분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작년에는 2~3개사였는데 올해는 17개사가 50여개 주주제안을 했다. 과거에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도 기업이 거의 안 들었다. 이제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기관투자자 뿐 아니라 어느 주주라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됐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과제가 있다면

국민연금도 가입했지만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적극적으로 하려면 돈을 위탁하는 운용사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 공적연금은 위탁 운용사에 100%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키도록 한다. 가산점 주는 정도로는 안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해 중장기적으로 운용해도 가입 안 한 자산운용사가 위탁하고 있으면 소용 없다. 실적 평가도 길게 봐야 한다. 일본의 경우 자산운용사 실적 평가도 5년 이상 길게 본다.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 넘어야 할 걸림돌이 있나

▲법적 문제가 해결돼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연금 자유주의 문제도 해결된다.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의 의결권을 쥐락펴락한다는 논란을 잠재울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의 퇴직연금 등을 운용해야 해 기업에 객관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이해 상충이 발생했을 때 원칙을 두는 것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이해상충이 생겼을 때 섀도 보팅(의결권 대리행사)을 한다. 시장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평가도 잘해야 한다는데

▲지금 94곳이 도입했고 내년에는 200개까지 갈 것으로 본다. 도입해 놓고 실제로 안 하면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 누군가 잘하고 있는지 평가를 해줘야 한다. 영국은 FRC(재무보고 위원회)가 자산운용사나 연기금을 관리하고, 심하면 퇴출도 한다. 퇴출되면 기록이 남기 때문에 시장 기능에 의해 정화된다. 일본은 더 시장중심적이다. 일본 공적연금적립금관리기구(GPIF)는 직접 감독하고, 잘 안 지키는 회사는 돈을 뺀다. 한국도 도입 초기에는 성과가 미미하지만 2020~2021년에는 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은

▲기업지배구조연구원장으로 와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제일 중요하게 봤기에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출장을 다녀왔는데 독일, 이탈리아 등 해외 국가들은 10년 넘게 기업지배구조 관련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가 지배구조 관련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이번에 법제화를 추진중인 '금융복합그룹 통합감독법'을 소개하자 우리나라 재벌과 구조가 비슷한 이스라엘 등 해외국가들의 관심이 컸다.

아쉬운 점은 기업지배구조원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급을 부여하는 데 이해 상충으로 컨설팅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밥 먹고 이것만 하기 때문에 이 분야는 전문가들이다. 향후 기업지배구조 등급이 낮은 회사들에 무료 컨설팅을 하면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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