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미국의 선제적인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채권시장의 믿음이 깨질지 주목된다.

한국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여전히 강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보다 매파적인 입장을 나타내면서 채권시장의 이런 통념이 인하 전망에 심리적인 장애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3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여야 할 강력한 근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플레이션의 하락이 일시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미국 FOMC와 이주열 총재의 발언 뒤 내린 결론은 미국이 먼저 인하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콜금리 목표제를 시행한 1999년부터 살펴도 한은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선 사례는 없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거나 유지하는 시기에 한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경우는 있지만, 이는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높아 금리 역전에 따른 우려가 없던 시기다.





한은이 단시일 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향후 어떤 입장을 취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부담을 져야 하는 셈이다. 또 금리 인하에 따라 기준금리 역전폭도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후폭풍도 감수해야 한다.

다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는 쉽게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운용 본부장은 "연준이나 한은이나 금리를 조정할 생각이 없다고 계속 말을 했지만 시장은 인하를 요구했다"며 "과거에도 한국은행이 입장을 바꿔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경우가 있고, 현재 국내 실물경제 상황도 부진해 시장이 인하를 트라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 없이도 실질적으로 완화정책을 재개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만은 예외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준은 지난 3월 FOMC 성명에서 오는 9월 대차대조표 축소를 중단하고, 10월부터는 만기가 도래하는 주택저당채권(MBS)을 미 국채로 재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국채 재투자를 통해 금리 인하시 나타날 수 있는 시장의 쏠림을 방지하고, 특정 만기 국채를 매수해 장단기 수익률 곡선의 역전도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원은 "(국채 재투자는) 수익률 곡선 자체를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연준이 10월부터는 완화적인 정책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본다"며 "10월 이후라면 연준의 정책 스탠스가 변하고 난 뒤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선다는 이야기기 때문에 한은 입장에서 큰 부담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의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며 "5월을 넘길 수 있기 때문에 의결 시점도 주의깊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경 집행이 지연되면 경기 개선 효과도 늦춰질 수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도 금리 인하 기대를 높인다는 평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6% 올라 4개월 연속 0%대를 나타냈다. 1∼4월 전년 대비 누계 상승률은 0.5%로, 1965년 통계 집계이래 최저 수준이다.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연준이나 한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4월 소비자 물가가 0%대라는 것이 문제"라며 "채권에는 확실한 롱 재료"라고 말했다.

j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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