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욱 기자 =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8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행사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이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규제완화 의지를 밝히면서 규제혁신 1호 법안인 인터넷은행 특례법은 약 40일 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인터넷은행법 시행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인터넷은행의 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복병을 만나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현재 법체계에서는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ICT 기업이 주도하는 금융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나온다.

◇ 케이뱅크·카카오뱅크 대주주심사 '먹구름'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중순 KT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케이뱅크 한도초과보유승인(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멈췄다.

이후 공정위가 과징금 57억원 부과와 함께 KT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중단은 장기화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금융위는 KT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일정을 중단할 방침이다.

KT가 재판에서 벌금형 이상을 받을 경우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불승인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에는 최근 5년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으로 벌금형 이상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불승인은 KT가 케이뱅크 지분을 34%까지 늘려 최대주주가 되겠다는 계획이 무산되는 것을 뜻한다.

케이뱅크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신규 투자자를 주주로 영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권에서는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KT가 대주주를 포기하는 것이 케이뱅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얘기도 나온다.

카카오뱅크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 카카오뿐 아니라 개인 최대주주인 김 의장까지 포함해야 하는지 법제처에 요청한 상태다.

만약 김 의장도 심사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해석이 나오면 김 의장의 재판결과에 따라 카카오뱅크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에 어려울 수 있다.





◇ 업계 "인터넷은행 대주주 요건 완화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과 ICT 업계에서는 은산분리를 골자로 한 인터넷은행법만으로는 규제혁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까지 나서 인터넷은행법을 통과시켰지만 정작 KT와 카카오는 까다로운 대주주 자격요건에 막혀 인터넷은행 지분 확대를 못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ICT 업계 관계자는 "산업의 특성상 ICT 업체들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며 "과거 불공정행위를 이유로 업종이 다른 은행업 진출을 막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ICT 기업이 주도하는 인터넷은행으로 금융혁신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주주 자격요건과 관련된 규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업계에서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앞으로 탄생할 제3 인터넷은행도 규제의 벽에 막혀 좌초될 우려가 있어서다.

현재 금융위는 최대 2곳까지 신규 인터넷은행 인가를 내주기 위해 키움뱅크와 토스뱅크에 대한 예비인가 심사를 진행 중이다.

키움뱅크와 토스뱅크는 각각 키움증권을 포함한 다우키움그룹과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의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를 최대주주로 내세웠다.

외부평가위원회 평가를 포함한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이달 중으로 금융위에서 예비인가 여부를 의결할 예정이다. 이후 본인가를 거쳐 신규 인터넷은행은 이르면 내년 영업을 시작하게 된다.

◇ 인터넷銀, 중금리대출 확대 등 성과 남겨

대주주 적격성 심사와 관련된 여러 논란에도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지난 2017년 출범 이후 중금리대출 확대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지난 3월 말 기준 두 은행의 고객수는 케이뱅크 98만명, 카카오뱅크 891만명이다. 출범 2년 만에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이 인터넷은행 계좌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3월 말 현재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수신 금액은 각각 2조5천900억원과 14조8천971억원에 달한다. 여신금액도 케이뱅크 1조4천900억원과 카카오뱅크 9조6천665억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 정책에 발맞춰 중금리대출 규모를 늘리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월별 일반신용대출(가계) 실행금액 중 6~10% 금리로 대출이 나간 비중을 비교해 보면, 케이뱅크는 24~44.8%의 비중으로 매월 은행권 1위를 기록했다.

실제 케이뱅크의 4등급 이하 대출 비중은 전체 대출건수 대비 60%, 금액 기준 40%로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카카오뱅크도 지난 1월 정책 중금리대출 상품 사잇돌대출을 출시한 이후 두 달 만에 1천220억원을 시장에 공급했다. 아울러 카카오뱅크는 올해 민간 중금리대출 상품을 추가해 2022년까지 매년 중금리대출을 1조원씩 공급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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