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정원 기자 = "가격을 얼마나 더 올릴 수 있나요"

롯데그룹이 롯데카드의 새 주인을 발표하기 닷새전인 지난달 29일 씨티글로벌마켓증권 관계자가 인수전에 뛰어든 주요 후보들을 찾았다. 씨티는 롯데카드 매각주관사다.

씨티는 하나금융지주와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 한앤컴퍼니를 차례로 돌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은행-MBK파트너스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자체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던 때다.

각 후보자들은 당황했다. 본입찰에서 인수 희망가격을 써냈는데, 가격을 더 올릴 수 있냐고 물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이처럼 여러번 인수가격 경쟁을 붙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갑작스러운 2차 비딩에 인수 후보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대가 제시한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를 더 써내야 하는가를 두고 셈법도 달랐다.

그간 롯데카드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후보는 하나금융이었다.

롯데카드를 인수하면 자산 기준으로 카드업계 3위로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고, 기존 금융사업과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

롯데그룹도 내심 전략적 투자자(SI)인 하나금융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한화그룹이 막판 불참하면서 시장에서도 하나금융의 무난한 독주를 예상했다.

하나금융은 본입찰에 앞서 "증자 없이 1조원 정도 준비됐다"며 사실상 롯데카드 인수에 1조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하나금융이 써낸 가격도 1조원 남짓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변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던 인수전은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과 한 팀을 이루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우리은행의 등장으로 1곳의 SI와 2곳의 재무적 투자자(FI)가 경쟁했던 기존 경쟁 구도가 SI 2곳과 FI 1곳으로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초 SI인 하나금융만 잡으면 될 것으로 보고 전략을 짜왔던 한앤코 입장에서는 SI의 추가 등장이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특히, 롯데가 SI를 강력하게 선호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한앤코는 예상을 뛰어넘는 '고(高)베팅'이 아니고서는 인수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앤코는 2차 비딩을 승부처로 삼았다.

하나금융의 경우 이사회를 통해 인수자금을 사실상 확정해 놓은터라 이 보다 더 높게 올릴 수 없는 제약이 제약이 있었다.

더욱이 롯데그룹이 상정한 수준(1조5천억원·지분 100%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해 본입찰 심사 과정에서 이미 멀어졌다는 후문이다.

막판 유력후보로 떠오른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은 롯데 측이 희망했던 매각가에 근접한 수준에서 가격을 써낼 것으로 내다봤다.

롯데카드 매각대상 지분율(80%)을 감안하면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은 1조2천억 원대를 매입가로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MBK파트너스가 우리은행을 끌어들이며 자금부담을 덜 계획이었으나 오히려 매각가격 제안에 있어 단독 인수보다 상대적으로 제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코는 이러한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가격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한앤코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전 진행된 2차 비딩에서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제시할 것으로 예상한 금액보다 약 2천억원 이상 많은 약 1조4천400억원을 인수 희망가로 적어냈다.

롯데카드 전체 몸값을 1조8천억원 수준으로 본 것이다.

한앤코는 나아가 롯데그룹이 요구한 기존 임직원의 고용 승계와 롯데그룹의 이사회 참여 등의 조건도 수용했다.

이 역시 하나금융이나 우리은행의 경우 기존 카드사와 합병 문제가 고용 승계에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롯데그룹은 마지막 비딩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이틀 전인 지난 1일 한앤코를 낙점했다.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보다 20% 이상 높은 가격을 제시해 최종 승자가 된 것이다.

SI에게 매각하는 방안을 고수했던 롯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던진 마지막 '승부수'가 결국 통했다는 분석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그간 자동차부품과 시멘트, 해운 등에 투자하며 펀드 규모를 키워왔던 한앤코 입장에서는 추가 성장을 위해서는 금융사 인수에 대한 레코드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한앤코는 2012년 대한시멘트를 인수한 뒤 이후 한남시멘트, 쌍용양회 등도 인수하며 시멘트 분야를 강화해왔다.

이와 함께 최근 한온시스템을 통해 마그나 인터내셔널의 유압제어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등 자동차부품 분야에 특화된 PE로도 통한다.

해운업 분야에서는 한진해운 전용선 사업부(현 에이치라인해운)와 현대상선 벌크 전용선 사업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SK해운까지 품었다.

'전통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미 국내 대표 PE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한앤코가 추가적인 영향력 확대에 나서려면 규모가 있는 금융사 인수 경험이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이번 롯데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는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나온 매물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사 매각에 난색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이만한 매물을 또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IB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과거 VIG파트너스의 동양생명 매각이나 MBK파트너스의 ING생명 매각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금융사 인수로 PE들이 손실을 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국내외 금융그룹 등 원매자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인수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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