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초대형 IB(투자은행)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들어섰다. KB증권은 지난주 금융당국으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음으로써 발행 어음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에 이어 초대형 IB 중에선 세 번째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10년간 추진해온 초대형 IB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 모양새다. 여러 복잡한 사정상 다소 늦어졌지만, 초대형 IB가 경쟁체제를 갖추고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무대는 오래전에 만들어졌으나 배우가 없던 공연장에 주인공들이 속속 데뷔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배우 지망생들도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대주주로부터 6천600억원의 자본확충을 받아 자본금 4조원의 초대형 IB의 요건을 갖췄다. 김병철 신금투 사장은 이제 대등한 조건으로 경쟁하게 됐으니 성적 부진에 대해 변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직원들을 직접 독려하고 있다.

이미 발행 어음 인가를 받은 초대형 IB 3인방이 총 10조원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신한금투 등이 합류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이제 증권사 스스로 확보한 돈으로 알짜 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수익모델이 확고히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초대형 IB들이 발행 어음으로 확보한 자금을 어디에 투자해 수익을 낼 것인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기업공개(IPO)와 회사채, 부동산, M&A(기업인수 합병), 부동산, 항공기 등 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게 초대형 IB들의 심산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무시돼선 안 될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들에 부동산 투자 심사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증권사들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몰려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증권사 프로젝트 파이낸스(PF) 우발 채무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초대형 IB들이 확보한 자금이 부동산에 쏠리기보다는 중소기업 지원 같은 건설적인 방향에 쓰이면 좋을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모험자본 육성과 시너지를 발휘하면 긍정적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시장의 발전을 앞당기는 것도 기대해봄 직하다. 그러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고 위험한 투자만 일삼는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세계를 뒤흔들었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어디서부터 초래됐는지 상기해봐야 한다. 거대 투자은행이 감당하지 못할 위험을 스스럼없이 떠안고, 그걸 서로 떠넘기고 숨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대미문의 위기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 상황과 현재 우리 상황은 엄연히 다르지만, 위기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목이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한 초대형 IB가 한국판 리먼 브러더스로 전락하지 않도록 관계 당국과 IB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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