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말씀'으로 시작됐다. 지난 22일 열린 '청년 전·월세 대출 협약식'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정부의 혁신 노력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다며 작심한 듯 이야기를 꺼냈다.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직후였다.

거침이 없었다. 최 위원장은 이재웅 쏘카 대표를 '무례하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뜨거운 타다 논란에 기름을 붓는 일임을 모를 리 없었지만, 최 위원장은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그는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죽음을 정치화하고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최근 이 대표의 언사를 문제 삼았다. 타다 퇴출을 주장하는 택시업계에서 발생한 연이은 분신 사태를 향한 이 대표의 비판을, 최 위원장은 너무 거칠다고 했다. 정부가 힘을 실어준다 해서 혁신사업자들이 오만한 생각을 한다면 자칫 사회 전반의 혁신동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이날 최 위원장은 혁신과 계층이란 단어를 수차례 언급했다. 정부의 혁신 사업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지키겠다는 소박한 일자리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수많은 가장과 생활인이야말로 취약계층이라는 생각에서다.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한 타다 논란을 지켜보며, 최 위원장은 그간 주변에 언젠가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비쳐왔다고 한다. 금융위원장이 타다 논란에 말을 더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남의 부처 일에 대한 간섭이었겠지만, 혁신성장과 포용 금융을 담당하는 금융위원장에게는 자기 일과 궤를 같이했을 수 있다.

물론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직설화법에 대한 반감은 컸다. 이재웅 대표는 최 위원장을 둘러싼 총선 출마설을 꺼내며 맞대응했다. 이찬진 포티스 대표, 서영우 풀러스 대표 등 혁신성장의 주역들도 더불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금융위가 부랴부랴 최 위원장 개인 소신을 밝힌 것이라며 확전을 자제했지만 통할 리 만무했다.

최 위원장의 작심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금융 홀대론을 반박하고 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의 갑질과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 은행권의 이자 장사,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국회에서도 입씨름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정무위원장은 직설화법보다 우회 화법을 써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날 최 위원장의 발언도 여야 국회의원들, 경제관료 선후배들 사이에서 꽤 회자했다. 모두가 '최종구답다'고 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을 참지 않는 그의 직설화법을 두고 '지지 않는 말을 한다'라고도 했다.

지지 않는 말은 어렵다. 소신을 드러내는 일은 감당해야 할 무게가 무겁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데 익숙한 공무원 세계에서는 더욱 힘든 일이다. 일부에서 최 위원장의 이러한 모습이 정치권 출마설을 부추긴다고 한다. 물론 그를 잘 아는 선후배들은 이에 대해 '너무 나간 이야기'라며 웃는다. 하지만 소신을 작심할 수 있는 공무원은 몇 없다고 했다.

과거 기획재정부 차관보로 외환당국 수장을 맡았을 때도 시장 안정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거침없이 발언을 쏟아냈고, 특유의 '뚝심'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오는 7월 최 위원장은 취임 3년 차를 맞는다. 3년의 임기 중 2년을 넘겨 자리를 지킨 금융위원장은 소수다.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던 시절 닮고 싶은 상사에 매번 이름을 올렸던 그를 향한 후배들의 지지는 금융위에서도 여전하다.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그의 소신을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책금융부 정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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