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윤우 기자 = 간밤 국제유가가 6% 가까이 미끄러지며 폭락하자 금융 시장의 불안 심리가 한층 더 커졌다.

수급 우려와 주요국 경제 지표 부진,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한 공포감, 기술적 움직임 등이 급락의 배경으로 꼽혔다.

23일(미국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51달러(5.7%) 폭락한 57.91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유가는 작년 말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지난 3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유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유가를 짓눌렀다.

전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주 원유 재고가 약 474만 배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40만 배럴 감소에 배치되는 결과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글로벌 원유 재고가 4월 초에서 5월 중순 사이에 정유 업체들의 생산 감소로 5천만~6천만배럴 늘었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3.2%로 0.1%포인트 낮추는 등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재고 증가는 과잉 공급 우려를 부추겼다.

실제로 주요국 경제 지표는 성장 전망을 비관하게 했다.

IHS마킷은 미국의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6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9년 9월 이후 최저치다.

일본의 5월 제조업 PMI가 40.6으로 경기 확장과 위축을 가르는 '50'선 아래로 추락한 데 이어 같은 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합성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1.6으로 시장 예상에 못 미쳤다.

유럽 경제의 중심인 독일 경제에 대한 신뢰도도 기대 이하로 나왔다. 독일 Ifo 경제연구소는 5월 기업환경지수가 97.9로 전망치를 밑돌았다고 발표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정이 완화한 것은 유가에 독이 됐다.

공급 증가에 대한 기대감이 되레 유가 하락세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간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 우려가 유가를 밀어 올렸으나 이날 미국 정부는 협상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강경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도 유가에 하방 압력을 가했다.

세계 경제에 부담을 줘 원유 수요가 위축될 것이란 불안감이 고조된 결과다.

OECD는 미국과 중국이 고율 관세 전면전에 들어가면 2021년까지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티케캐피털의 타리크 자히르는 안전자산 선호 움직임이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원유 시장에도 파급됐다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기술적 후퇴와 투기 세력의 쏠림을 유가 하락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유가가 60달러를 밑돌자 유가 상승에 베팅했던 세력들이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낙폭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유가 하락세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거나 산유국이 감산을 통해 유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게 일부 애널리스트의 견해다.

석든파이낸셜의 조르디 윌키스 리서치 헤드는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이 유가 프리미엄을 키우다가 최근 완화했다"며 "갈등이 다시 고조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yw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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