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타다와 톨레랑스
[데스크 칼럼] 타다와 톨레랑스
  • 고유권 기자
  • 승인 2019.05.24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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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묻는다. 카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야 할 길이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조정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월 새 시내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극단적 선택을 한 택시 기사만 5명이다. 혁신을 앞세운 공유경제의 첨병이 될 것으로 보였던 카풀이 되레 사회 갈등의 중심에 섰다. 갈등은 단순히 주체 간 이해 문제를 넘어서 혁신과 포용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진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말은 거칠어지고 있다. 갈등의 피로도가 커진 탓이다. 결국 극단적 감정 상태가 건설적인 논의를 압도해 버린다.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이재웅)→"이기적이고 무례하다"(최종구)→"갑자기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이재웅)→"그렇게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최종구).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지난 이틀간 벌인 설전이다. SNS를 통해 벤처기업인들까지 가세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비껴간다. 누가 더 비꼬았는지에만 관심이 쏠린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기업인을 압박하는 듯한 말을 한 최종구 위원장도,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친 이재웅 대표도 온당한 처신은 아니다. 특히 생존의 문제를 죽음으로 선택한 국민을 두고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고 운운하는 이 대표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를 제기하고 맞받아치는 태도와 자세가 모두 서툴다. 그렇더라도 논쟁의 장에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끌어 올리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최 위원장은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를 이끌어야 한다"고 했고, 이재웅 대표는 "혁신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고 맞받았다. 같은 길(혁신)을 가겠지만 과정과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말도 이 대표의 말도 모두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디지털이 중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과 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곧 생존이다. 먹고 사는 문제다. 최종 소비자의 편의를 높여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후생을 확대하려는 목적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패자 또는 희생자)을 어찌해야 하는가. 결국 혁신과 공유경제를 바라보는 서로의 시각은 포용이라는 명제 앞에서 갈린다. 포용의 주체가 누가 돼야 하는가로 확장한다.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들을 보듬고 가야 한다는 최 위원장의 입장은 주체 간 상생에 방점을 둔 듯하다. 카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김현미 장관이 "새로운 산업 주체들의 사회적 책임과 기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이재웅 대표가 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산업 종사자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혁신산업도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주도적이고 중심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인식 차이를 단순히 돈의 분배 차원으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희생자들에게 누가 조금 더 돈을 내 보듬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그게 가장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고 반목의 이유가 돼 버린 듯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상생이라는 말은 참 매력적인 말처럼 다가온다. 특히 경제 주체 간의 상생은 일상어가 돼 버렸다. 대기업들은 협력사들에 이런저런 인센티브를 주면서 상생경영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정부도 상생을 잘하는 기업들에 규제를 덜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힘의 우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나 상생이 가능하다. 약자가 강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상생은 강자의 주도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현재 카풀 이슈에서 강자는 누구인가. 택시업계는 카풀 사업자들이 자본의 힘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한다. 카풀업계는 택시업계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면서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가 강자라고 떠미는 형국이다. 카풀 문제를 상생의 입장으로만 풀 수 없는 이유다. 1995년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톨레랑스(관용)'라는 말을 전한 홍세화는 "노골적 불평등과 억압과 배제의 형태가 은밀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다름을 인정하고 용인한다는 의미로 톨레랑스를 해석한다. 그가 말하는 톨레랑스를 카풀 문제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톨레랑스의 정신처럼 이해관계로 얽힌 주체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용인하면서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최종구와 이재웅의 설전은 그래서 건설적인 논쟁과 논의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다시 돼야 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드릴 말씀이 여럿 있지만, 논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다"고 하지 말고 논쟁의 장에 다시 뛰어들어야만 한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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