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부진한 내수 회복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국회 파행 등으로 정상적인 집행이 요원해지면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득보다 실이 많은 정책일 수 있다며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이자는 가계의 소득원…빚내라는 시그널 될 수도

기준금리 인하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원된 각종 대증요법식 경기 부양양책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만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의 이자소득 축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자는 임금과 함께 가계의 대표적인 소득원이다.

한은 등에 따르면 가계의 순이자소득은 최근 들어 급감하고 있다. 이자 수입에서 이자지출을 뺀 순이자 소득은 2001년 1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긴 지난 2016년 가계의 순이자 소득이 5천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2017년에는 적자폭이3조9천억원으로 늘었다. 기준금리 인하는 가계의 순이자소득을 더 가파른 속도로 줄일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더 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빚을 추가로 내라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기준 금리 인하가 겨우 잠재운 부동산 투기 열풍을 다시 자극할 경우 파국적인 결말에 이를 수도 있다. 기준금리 인하는 부채에 의존한 부동산 투기 등으로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는 자산가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시중 자금은 채권시장에서만 돈다

27일 현재 서울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연 1.792%다. 만기 1일의 한은 기준금리가 연 1.75% 수준이다. 정부는 불과 4bp만 더 부담하면 하루짜리 금리로 10년짜리 신용을 일으킬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상황 등을 감안해도 한국의 국채 금리는 충분히 낮은 수준이다. 시중의 유동성이 채권시장에만 과도하게 몰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현재 최종호가 수익률을 바탕으로 작성된 채권 수익률곡선>



채권금리로만 보면 싸고 질 좋은 돈의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이지 돈의 가격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의 통화정책이 충분히 완화적인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당국은 오히려 은행권의 수탈적인 대출금리 스프레드 조정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은행권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복잡한 대출금리 스프레드 산정방식 등을 앞세워 대출금리 인하 폭을 최소화해 왔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1천500조원 시대다. 대출금리 스프레드 정상화가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보다 더 큰 정책효과를 볼 수 있다.



◇미국이 환율전쟁 선포했는 데 금리인하한다면...

미국은 이른바 '환율전쟁'에 시동을 걸었다. 주요 교역상대국의 통화 가치 절하(달러 대비)가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보조금에 해당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대응할 관세도 부과될 전망이다.

미국이 당장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 칼끝이 언제 한국으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한국도 관찰대상국에 포함된 상태다. 기준금리 인하는 원화 절하를 강력하게 유도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환율전쟁 국면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미국에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원화환율 절하를 촉발하는 기준금리 인하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반도체 등 주력 상품의 수출 부진으로 경상수지 흑자 기조에도 균열이 발생하면서 가파른 속도로 한국시장을 이탈하고 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가 핵심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보면 기준금리 인하는 가계의 빚만 늘렸다. 유효수요를 자극하는 데도 실패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모닥불에 휘발유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불길을 더 키우려면 재정정책 등을 통한 가계소득 확대 등 땔감을 보충해야 한다. 대증요법식 경기부양이라는 휘발유를 끼얹으면 일시적으로 불길만 커졌다가 사그라질 수 있다.

정부와 통화 당국은 다급할수록 깊게 성찰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더 내리면 가계 가처분 소득이 늘고 기업의 투자도 늘어날까.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1천500조원에 이르는 가계의 부채 증가로 이어지진 않을까. 자칫 엇박자 통화정책이우리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지는 않을까.(취재부본부장)

neo@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