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계가 각성 중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표현으로 세계 경제 '불운의 아이콘'이었던 일본이 요즘 '뉴노멀'이 되고 있다. 거시 경제 지표가 점점 일본의 닮은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고령화 등으로 경제 역동성이 곳곳에서 동시에 낮아지고 있다. 앞서 이런 상황을 경험한 일본의 대처가 미래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아직 금리는 제로 수준으로까지 추락하지 않았지만, 장기적인 방향이 일본과 비슷하다. 최근 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지나치게 낮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대로 제로금리를 걱정해야 한다면 다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도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 순서다. 제로,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업에 '독'이다.

특히 수십 년 후에 가입자에게 내줘야 할 자금을 굴리는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장기투자기관에는 치명적이다. 약정한 금리를 못 맞추거나 운용수익률이 낮아지는 역마진 발생 가능성이 있다. 2016년 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일본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종신과 연금 등의 상품 일부를 판매 중단했다. 다음 해 일본 공적연기금(GPIF)은 단기자산을 신탁은행에 예치하면서 이자를 받지 않고 오히려 수수료를 냈다.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인구감소와 고령화에다 운용수익률까지 낮아지는 보험사와 연기금에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일 것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봄까지 연방기금(FF)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전망도 등장한다. 미 경기가 식으면 변방의 통화정책은 자율성을 잃어왔다. 미 FF 금리 선물시장은 올해 인하 가능성을 70% 이상 반영 중이다.

더 무서운 것은 제로금리 시대에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명목금리가 장기간 저공비행 하면 자산가격 상승과 신용 증가로 거품이 커지고, 그 후 터지는 게 금융위기다. 우리는 아직 아니다, 다르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북한 지정학적 위험, 기축통화국이 아닌 점, 가계부채라는 특유의 상황 때문이다. 다만 올해 13년 만에 GDP 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가 되면서 경상성장률 2%대 달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로금리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할 논거가 점점 마땅찮아 답답하다. (자산운용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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