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서울채권시장에서 더 이상 '기준'이 안 되는 것 같다. 중·단기 국고채 금리는 물론 10년 이상 장기금리도 기준금리(1.75%) 밑으로 내려갔다. 그 배경에는 외국인이 있다. "외국인이 미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이들의 원화채 매집은 위협적인 수준이다. 국고채 10년물이 단기 지표인 기준금리를 밑도는 것이 우리 눈으로 보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터지만, 외국인 시각에선 크게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외국인은 5월에만 원화채를 8조원 넘게 순매수했다.(연합인포맥스 4576 화면, 금융감독원 외국인 잔고 참고) 아직 월 집계가 안 끝난 상태임에도 최근 3년 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매도 우위를 보인 날은 지난 3일 단 하루였다. 외국인의 폭발적인 매수는 채권 가격 강세(금리 하락)를 이끌었다. 전일 기준으로 국고채 3년 금리는 1.626%, 국고채 5년 1.651%, 10년물은 1.741%를 보였다. 만기 20년에서 50년의 초장기물 금리도 기준금리인 1.75%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에 있다.

증권사, 은행 등 국내 투자자들은 서울채권시장에서 '레벨' 부담을 얘기한다. 우리나라 국채 대부분이 기준금리를 한참 밑돌거나 그 수준에 임박해서 신규 매수는 꺼려진다는 것이다. 채권 보유 기관도 시장 금리가 조달 금리에 못 미쳐 발생하는 역캐리(Negative carry)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외국인이 미친 듯이 사들이는 상황에서 자칫 팔았다가 강세장에서 수익을 못 내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외국인은 무엇을 보고 이렇게 비싼 원화채를 사는 걸까. 우선 글로벌 채권시장의 초강세가 영향을 주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분쟁 악화와 경기 우려 등으로 주요국 장기금리도 각국의 정책금리를 밑도는 추세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29일 기준으로 미 연방기금금리(FFR)의 범위 하단인 2.25%를 하향 돌파했다. 호주의 국채 10년물 금리 종가도 기준금리인 1.5%보다 낮은 1.4934%를 보였다.

외국인 입장에서 원화채 금리가 여전히 매력적인 수준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달러로 환산했을 때 국고채 주요구간 금리는 3% 초반대로 평가된다. 달러-원(FX) 스와프 포인트를 반영한 수치다. 1년 만기 FX 스와프 포인트는 전일 기준 마이너스(-) 17.60원을 나타냈다. 지난달 4일 14.50원에서 마이너스 폭이 커졌다. 이는 원화채에 투자했을 때 외국인의 이익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예컨대 미 달러를 보유 중인 외국인이 현시점에 달러를 팔아 원화를 사고, 나중에 달러를 사는 거래를 할 경우 달러당 17.50원가량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한 달 전 달러당 14.50원 이익에서 그 규모가 늘어났다. 원화로 환전해 국고채를 샀을 때 이런 이익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원화 스팟이 달러당 1,190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환에서만 1.47%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스와프를 통해 국고채 3년물을 산다면 채권 금리 약 1.63%를 더해 총 3.10%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수익률이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한국투자증권 채권딜링룸의 도움을 받아 스와프 포인트를 반영한 달러 환산 수익률을 계산해봤더니 한국 국채(1년 만기 약 3.12%)는 이탈리아 국채(3.23%) 다음으로 수익률이 높았다. 일본과 스페인 국채가 2.7%대였고, 캐나다와 프랑스, 영국 국채 등이 2.5%대의 수익률을 보였다. 독일과 멕시코, 호주, 중국 등의 국채 수익률은 2% 초반대에 머물렀다.

최근 금리 하락에도 달러 보유 외국인이 원화채를 공격적으로 사고 있는 주요 근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언제가 됐든 기준금리를 내리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폭 확대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가 아직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전문가들 논리로나 그간의 시장 경험으로 보면 기우에 가까운 얘기다. 답은 결국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와 통화당국의 정책이 일관성없이 흔들릴 때, 그 결과로 펀더멘털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을 때가 외국인 엑소더스의 시작일 수 있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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