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통화정책 관련 시그널이 열흘여 만에 확 달라졌다. 사실상 한은의 금리 인하는 시간문제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기념사에서 "경제 상황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대내외 여건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정책 운용전략을 수립해 적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31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는 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니다. (금리 인하) 소수의견은 그야말로 소수의견으로, 금통위 시그널이라는 것은 무리"라고 했던 발언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에 대해 한 전직 한은 임원은 "통화정책의 첫 번째 '맨데이트(Mandate)'인 물가가 안정된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맨데이트인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이 좋지 않다 보니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인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통화정책은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어렵고, 한은만 다른 방향으로 가긴 더욱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금리를 내리기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을 추종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금리 인하가 경제활력 제고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다. 이론적으로 금리가 낮아질수록 기업의 자금조달비용이 낮아지고, 투자 욕구도 커진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날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함께 통화정책 지원이 경기회복에 일정 부분 힘이 될지도 모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통화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하는 것처럼 금리 인하가 만병통치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와 마이너스(-) 금리에 이어 양적 완화라는 처음 듣는 통화정책 운용수단을 통해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이들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유럽중앙은행(ECB)은 추가적인 부양책을 시사했고, 다소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제도 재차 둔화하는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오랜 저금리기조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등 경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최근 전개되는 경기둔화가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성장과 물가로 대표되는 총수요를 안정시키는 통화정책이 정작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여전하다.

오히려 금리를 내리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화정책을 비롯한 대부분 경제정책은 하나를 얻으면 적어도 다른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 한은 입장에서는 다소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만 끌어올리는 빌미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금리를 내리지 않은 지금도 시중 유동성은 넘쳐난다. 한은이 발표한 '4월 통화 및 유동성'을 보면 4월 통화량(M2)은 2천763조58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6% 증가했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유동성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정작 회사채 신용스프레드는 축소되는 이상한 모양새도 연출된다.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도 올 1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4.9% 증가했다. 증가율이 둔화했다고 하나, 같은 기간 1.3% 증가율에 그친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나 마이너스를 기록한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결국, 가계소득이나 성장률과 비교하면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턱없이 높은 셈이다.

벌써 갈 곳을 잃은 시중 자금이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몰리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현실화하면 그동안 각종 대책으로 잠시나마 조정받던 주택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한은이 추가적인 통화완화조치가 경제회복으로 이어지도록 특단의 대책을 함께 제시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가 그렇지 않아도 주체하지 못하는 유동성만 늘려 경기 활성화가 아니라 집값만 자극하는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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