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트럼프와 LG
[데스크 칼럼] 트럼프와 LG
  • 고유권 기자
  • 승인 2019.07.0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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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용·최태원·정의선·손경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선 총수들이다. 지난달 30일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벌어진 재밌으면서도 희한한 광경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해 준 훌륭한 리더들"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TV 생중계 속 총수들의 표정과 자세는 뭔가 어색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총수들이니 더욱 그러했다.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30여분간 자기 자랑을 곁들여 장황하게 연설했다. 총수들은 궁금한 것을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 그저 악수 한번이 전부였다. 트럼프의 결론은 "그동안 투자해줘서 고맙다. 지금이 적기이니 더 투자해 달라"였다. 지갑을 연 김에 돈을 더 빼달라는 말이다. 트럼프스럽다는 말이 나옴 직했다.

어느 나라 정상이든 해외에 나가면 기업인들을 만나 투자해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 대통령도 똑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렇게 특별하게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맨'인 트럼프의 말이니 긴장감은 더욱 컸다. 특히 화웨이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한판 붙은 상황이었다. 우리 기업들은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랐다. 물론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미·중이 잠정 '휴전'을 선택한 터라 트럼프는 '화웨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트럼프의 연설을 한참 동안 듣다가 "LG는 왜 호명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재계 4위의 대기업 그룹이고, 삼성이나 현대차, SK, CJ처럼 미국에 투자도 하고 공장도 짓는데 말이다. 시계를 2010년 7월로 되돌려봤다. LG화학은 미시간주 홀랜드의 약 50만㎡ 부지에 3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공장 기공식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오바마가 직접 찾아왔다. 2010년엔 트럼프는 자연인이었다. 그리고 오바마는 트럼프가 극도로 싫어하는 대상이다. 트럼프가 LG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게 이와 관계는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뤄진 일이 아니니 애써 무시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종의 돌려차기 행위인 셈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투자한 건 모르겠고, 내가 대통령일 때 돈 쓴 것만 셈하겠다"는 것은 아닐까. 오바마에 대해 극도의 콤플렉스가 있는 트럼프이니 이러한 것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군다나 LG그룹 계열인 LG유플러스는 트럼프가 그토록 쓰지 말라던 화웨이 장비를 쓴다. 연설문을 써준 참모가 실수했을 리는 없고, 철저히 전략적인 트럼프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기질 속에는 여전히 장사꾼의 DNA가 남아있음을 보여준 명확한 장면들이었다. 미국에 공장을 짓건 현지 기업을 인수하건,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의 몫이다. 트럼프가 보여준 30분간의 쇼에 관객으로 참석한 우리 기업들이 갖게 될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최대 통신업체인 화웨이를 단박에 고꾸라지게 만든 힘을 가진 트럼프다. "투자해줘 고맙다"는 트럼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는 이번에 호명한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미국에 투자할 것인지를 눈여겨볼 것이다. 나에게 와 꽃이 되던지, 잡초가 되던지를 선택하라고 할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詩) 꽃의 한 대목). 누가 트럼프의 꽃이 될까. 궁금하다. 우리 정부는 이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 또한 궁금하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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