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제결제은행(BIS: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의 '748호 조사보고서'가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9월에 발표된 이 보고서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를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필립스곡선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what does the Phillips curve tell?)'라는 부제를 가진 이 보고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글로벌 금융위기이 이후크게 낮아졌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보고서를 사전에 보고받았다면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연준을 강하게 몰아세우는 무기가 될 수 있어서다.

이 보고서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잠재 성장률의 차이를 일컫는 아웃풋 갭(output gap)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26개 선진국과 22개 개발도상국에서 글로벌 요인과 국내요인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분리돼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서 2011년까지만 해도 선진국에서 국내 아웃풋 갭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견조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그동안과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가 등의 영향으로 국내 아웃풋 갭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상쇄된 것으로 관찰됐다. 선진국의 경우 글로벌 아웃풋 갭의 감소로 국내 아웃풋 갭의 영향을 크게 상쇄한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및 국내 아웃풋갭의 상관관계>

이 보고서는 평탄해진 필립스 곡선이 선진국의 중앙은행과 국제기구 등에 국내요인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 때 적정한 정책 옵션을 논의할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보고서는 개발도상국 중앙은행은선진국 중심의 의제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도국은 선진국과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이 보고서와 의견을 같이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의회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지난 50년간 강했는데,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필립스 곡선'에 따라 실업률과 물가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게 경제학의 통설이었지만 기울기가 평탄해지면서 상관관계가 약해졌다는 의미다.글로벌 금융시장은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등에서 빅랠리를 펼치고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낮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동시에 만족되면서 통화정책 완화의 여지도 생겼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평탄해진 필립스곡선을 빌미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이른바 미국판 '척하면 척'이 곧 가시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초기부터강조한 통화완화 정책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터무니없다고 생각됐던 트럼프의 몽니가 컨센서스가 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척하면 척'에서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태도나 모양을 일컫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척하면 척'이라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그시절 척하면 척의 주인공들은 지금 미국의 필립스곡선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취재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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