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보리스 존슨과 아베
[데스크 칼럼] 보리스 존슨과 아베
  • 고유권 기자
  • 승인 2019.07.1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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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15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라이엇 클럽(The Riot Club). 영국 상류층을 의미하는 포쉬(Posh)라는 제목의 희곡이 원작이다. 한 명문대학 가상의 사교모임인 라이엇 클럽은 영국 상류층의 폐쇄적이면서도 특권적인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신과 재력, 학력 등을 모두 갖춘 극소수의 백인 남성들로만 구성된 모임을 통해 영국 상류층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꼬집고 조롱한다.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천박한 계급적 우월 문화가 영국의 신사다움을 추락시킨다.

영화 라이엇 클럽의 모티브는 영국 명문대학인 옥스퍼드의 벌링던 클럽(Bullingdon club)이다. 옥스퍼드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은 아니다. 귀족에 버금가는 자격 조건을 갖춰야만 멤버가 될 수 있는 극도로 비밀스럽고 특권적인 모임이다. 라이엇 클럽이 개봉된 직후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된다. 클럽을 상징하는 제복을 입은 멀끔하게 생긴 옥스퍼드 학생들이 계단에서 폼을 잡고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당시 영국 총리이던 데이비드 캐머런과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보리스 존슨이 있다. 모두 영국의 명문인 이튼을 졸업하고 옥스퍼드에 들어간 최상위층들이다.

특권적 사교 모임에서 우의를 다진 캐머런과 존슨은 후일 전 유럽을 뒤흔들 엄청난 일을 벌인다. 바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다. 캐머런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했다. 당연히 반대표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에 반해 존슨은 강력한 브렉시트 찬성론자였다. 둘의 운명은 그렇게 갈렸다. 존슨이 승리를 한 꼴이 됐다. 존슨은 결국 차기 영국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존슨은 대중지 기자로 활약했다. EU 브뤼셀 특파원을 하면서 그가 쓴 기사들은 EU를 조롱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영국이 EU 체제 안에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당시 기자로 활동할 때부터 드러났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고, 노딜을 통해서라도 브렉시트를 감행할 태세다. 수많은 영국의 황색지들도 존슨의 생각을 전파하고, EU를 씹는 데 여념이 없다. 존슨이 꿈꾸는 세상은 '태양이 지지 않는' 과거의 대영제국이다. 하지만 실제로 브렉시트가 이뤄질까 노심초사하며 식료품 사재기에 나서는 영국 국민들의 마음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만의 리그' 벌링던 클럽에서 다져진 귀족적이고 특권적인 심리에 갇혀 있을 뿐이다. 더는 대영제국의 영광은 나타나지도 볼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과거의 영광을 추구하는 또 다른 '지도자'가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다. 아베 총리 역시 일본에서 간단치 않은 집안에서 귀족적이고 특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중의원을 지낸 아베 간이 친할아버지이고, 나카소네 내각에서 외무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가 아버지다.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 총리에게 정신적,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노부스케 전 총리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다. 현 일본 여당인 자민당 내 우익 세력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노부스케의 최대 정치적 목표는 평화헌법 개정이었다.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부스케의 이러한 생각은 외손자인 아베 총리에게로 고스란히 전수됐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목표도 평화헌법 개정에 맞춰져 있다.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선 표가 필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다면 '아베의 꿈'은 실현될 수도 있다. 주변국들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지 아베의 머릿속에는 없다.

EU 체제에 불만을 품고 노동당에 등을 돌린 노동자들을 왜곡된 정보로 존슨이 끌어들여 브렉시트의 원동력으로 삼았듯이 아베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어떠한 갈등과 싸움도 감수하려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무역도발'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보복'이라고 말하지만, 명백히 '도발'이다. 우리가 일본에 뭔가를 먼저 던진 게 없다. 보복은 대응 개념이다. 그래서 틀린 말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먹잇감으로 삼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 한켠에 자리 잡은 경제적 우월주의와 특권적 사고도 이번 도발의 한 이유일 것이다. "기껏 먹고 살게 해줬더니 이제 와서 감히 우리에게 어떻게"라는 심리 말이다. 한국은 자신들의 식민지였고, 경제적 토대를 자신들이 만들어 줬다는 일본 우익의 편향된 사고가 아베의 머릿속에도 뿌리 깊이 박혀 있지 않고서는 최근의 도발은 설명이 안 된다.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의 이번 같은 경제적 도발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또는 간헐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자신들이 필요할 땐 언제든 우리의 취약한 급소를 찾아 도발하고 공격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종속적 경제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힘을 더 키우지 않는다면 일본의 도발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은 힘들 것이다. 아베와 일본 우익의 머릿속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한다. 결국은 경제력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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