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글로벌 무역전쟁이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이 지난해 7월6일 처음으로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된 무역전쟁이 1년을 지나고 있지만,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수 있다는 기대는 확 줄어든 대신 무역전쟁 장기화와 전방위적 확산 우려만 커졌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역행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와 보호무역 조치는 시장에 상시적인 불확실성 요인으로 자리 잡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고려하면 향후 4년 이상 트럼프식 무역전쟁이 계속될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관세 사라지지 않을 것…2020년 미 대선 변수 촉각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모두 무역 합의가 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경기둔화를 우려하고 있고, 미국은 전쟁을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합의를 타결짓는 것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급한 불'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양쪽이 어떤 식으로든 합의를 한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합의가 나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며 이미 부과한 관세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카트리나 엘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가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게 뉴노멀"이라면서 "2021년이 돼도 관세의 점진적인 축소는 시작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연합인포맥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최대 경제국 사이의 '복잡한 권력 다툼(complex power struggle)'으로 진화했다"면서 "2020년께 합의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의미 있는 양보는 나오기 어렵고 대신 중국이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 구매를 크게 늘리고 미국은 관세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데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3천억 달러 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도 '적지 않다(nontrivial)'고 평가했다.

맥스 보커스 전 주중 미국대사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가 무기한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CNBC방송에 출연해 "솔직히 말해 이제 (무역전쟁이) 뉴노멀에 진입했다고 본다. 관세 폐기도 인상도 없을 것"이라면서 미중 분쟁에서 화웨이 이슈가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피치의 브라이언 쿨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이 상당히간 지속될 것이며 미국 정부가 바뀌어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양측이 여전히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무역전쟁 전망을 묻는 연합인포맥스에 이같이 답했다.



◇ 글로벌 공급망 혼란·脫중국 가시화…트럼프에 트럼프식 대응

지난해 ZTE에 대한 제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미국이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무역전쟁으로 끌어들이고, 관세 부과의 수위를 높이면서 글로벌 공급망 혼란과 기업들의 중국 공장 이전이 가시화됐다.

'깜짝 타결' 기대가 사라지고 기업들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할 수밖에 없게 된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으로 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길 바랐지만 실제로 기업들은 중국 주변국인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국가로 대부분 눈길을 돌렸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델, HP, 소니, 닌텐도 등이 상당한 규모의 생산설비를 중국으로부터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아시아 국가를 복수의 후보지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T기업 말고도 미국의 신발업체인 크록스와 맥주 쿨러 제조사인 에티, 로봇청소기 업체인 아이로봇, 카메라 업체 고프로 등이 이미 관세를 피해 중국의 공장 일부를 이전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방과 세계화,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정책을 휘두르면서 다른 나라들도 트럼프 무역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다.

피치의 제임스 맥코믹 국가신용등급 담당 헤드는 이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광범위한 외교정책 어젠다에 무역을 결부시키는 적극적인 무역정책의 문을 연 것처럼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주의와 함께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시기에 무역정책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글로벌 무역시스템이 이전의 자유주의와 개방 추세로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엘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상호작용하면서 주요 경제국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이 마지못한 무역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입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관세 보복은 맹렬하게 하고 있고, 유럽 역시 미국과 무역 긴장이 고조되면 더 심한 보복을 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경영대학의 헨리 가오 무역법 교수는 "미국은 다른 목적을 얻기 위한 무기로 무역관세를 사용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며 이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라면서 "일본과 다른 국가들도 아마 미국으로부터 같은 작업방식을 배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국제무역시스템에 정말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년대비 국가별 수입 규모의 변화. ※ 자료 = WSJ, 미 통계국>



◇ 미국발 환율전쟁 우려 상존…'불확실성'과 싸우는 금융시장

지난 1년간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불확실성과 계속해서 씨름해야 했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변동성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미국과 중국이 합의하기만을 기다렸지만 이같은 기대는 지난 5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 트윗과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시장은 무역전쟁 소식에 이전만큼 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이제 상수로 자리 잡았으며 미국발 환율전쟁이 언제 터질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이미 환율조작국에 대한 환율 상계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중국과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대규모 환율조작 게임을 하고 있으며 그들 시스템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이에 맞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트윗 캡처>


연준을 중심으로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대부분 완화기조로 돌아선 것도 자국통화 절하를 유도하는 환율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대비해야 할 무역전쟁의 예상 전개 상황에 '환율전쟁'을 언급했다.

맥코믹 헤드는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고 또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것일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강달러에 대해 큰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코믹 헤드는 지난 25년 동안 미국의 환시개입은 3번 밖에 없었다면서 미국 정부가 주기적으로 비전통적 조처를 채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율정책과 관련해 '불간섭' 주의는 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전쟁 당사자인 중국도 환율전쟁을 우려하고 있다.

위안화의 급격한 절하로 파괴적인 자본유출 사태를 겪은 경험이 있는 터라 미국의 행보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이 약해지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면 전면적인 무역전쟁과 환율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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