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종화 기자 = 서울채권시장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내린 데 이어 이 총재가 기자 회견에서도 시장 예상 이상의 비둘기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슈가 미국보다 빠른 7월 기준금리 인하에 명분을 제공했을 거란 관측이지만, 그 이면에는 시장의 금리인하 압박에 직면한 글로벌 중앙은행의 현실과 한은의 자체적인 정책 재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19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는 전일 금융통화위원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번의 금리 인하로 당장 기준금리가 실효 하한에 근접하게 된 건 아니기 때문에 한은이 어느 정도 정책 여력은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를 하더라도 향후 인하 가능성을 차단하려 할 것이라고 봤던 채권시장의 예측과는 다른 내용의 언급이다.

증권사의 한 채권 딜러는 "총재 발언의 뉘앙스는 예상보다 비둘기적이다"라며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시장에 항복한 금통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시장의 금리인하 압박에 시달리는 중앙은행

이 총재의 입장 변화는 한은을 비롯한 글로벌 중앙은행이 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각국 채권시장이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시중금리로 중앙은행의 인하를 압박하고, 중앙은행은 이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채권시장의 괴롭힘(bullies)에 연준이 희생양이 됐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런 상황을 지적한 바 있다.

경제지표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마저 시장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경기 둔화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미·중, 한·일간 두 개의 무역분쟁 사이에 낀 한국은행이 시장의 요구를 털어내고 운신할 여지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끌려가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어젠다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시장이 이미 양적완화를 학습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찾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과거에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시장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정책을 갖고 있었고, 일본은행(BOJ)의 구로다 총재가 열변을 토하면 시장이 이를 따라가면서 받아들였다"며 "현재는 무엇을 새로 시도하더라도 기존에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고,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의제를 선점하는 힘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끌려가는 현실에서 앞으로 한은이 취할 수 입장도 추가 금리 인하일 것이란 분석이다.

문 연구원은 한은이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두 차례 더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 경기 변수 '레인지' 언급한 한은…성장률 전망 대폭 수정 배경

한은의 입장 변화는 한은 스스로의 재검토에 의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일 이환석 한은 조사국장은 경제 분석의 기초로 '레인지(range)' 개념을 언급했다.

이 국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에 대해 얘기하면서 "(경제를) 전망하다 보면 설비투자가 얼마, 수출이 얼마 딱 숫자로 나오지 않고 레인지는 있을 수 있다"며 "어떤 때는 낙관적인 숫자를 쓸 수도 있고, 보수적인 숫자를 쓸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보수적인 쪽에 중점을 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은이 7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나 내린 것은 경제 변수의 범위를 정하고 움직이는 한은이 낙관론에서 비관론으로 급선회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은은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시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유지한 바 있다.

당시 한은은 지난 1분기 성장률이 전분기대비 마이너스(-) 0.3%(추후 -0.4%로 수정)으로 나온 상황에서도 성장률이 2분기 1.2%, 3~4분기 0.8~0.9% 수준을 나타낸다면 올해 전체적으로 2.5%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레인지 언급은 시장이 주목하지 않았던 이주열 총재의 '시나리오' 발언과도 유사하다는 평가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올해 처음 시사한 지난 6월 한국은행 69주년 기념사에서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정책운용 전략을 수립하여 적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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