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KB국민은행이 오는 9월부터 알뜰폰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금융+통신' 융합 서비스 등장을 두고 시중은행은 물론 이동통신 사업자의 관심도 뜨겁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LG유플러스와 알뜰폰 서비스를 출시하는데 필요한 망임대 협상의 막바지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첫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은행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같은 이동통신사업자로부터 통신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업무를 부수 업무로 인정했다.

국민은행은 오래전부터 이통사 시장에 관심이 컸다. 지난 2003년에는 전용 칩이 내장된 LG텔레콤 전용 단말기로 국민은행의 계좌를 조회하고 이체·출금하는 '뱅크온' 서비스를 출시했다. 작년에 삼성전자, SKT와 제휴해 선보인 금융특화 스마트폰 '갤럭시 KB스타'는 일종의 뱅크온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KT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덕에 MVNO 개념에 밝았던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일찌감치 금융회사가 휴대전화 유심(USIM)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했다. 유심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정보 활용은 물론 금융거래의 보안도 한층 강화할 수 있어서다. 윤 회장이 알뜰폰 사업의 도전 의지를 보인 것은 지난 2010년이다. 이후 당국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리기까지 7년이 걸렸지만, 법상 은행의 고유업무와 연관성이 없어 MVNO를 부수 업무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금융당국은 국민의 실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인 금융과 통신 산업을 융합할 경우 결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용평가를 개선하고 새로운 금융상품 출시, 통신 시장 확대 등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며 2년간 한시적인 사업 기회를 부여했다. 그간 이통사나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협업해온 국민은행의 노하우도 인정받았다.

대신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스마트폰 판매, 요금제 가입 등의 '꺾기'와 같은 구속행위를 방지하고 은행 직원들의 과당 실적 경쟁을 자제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지난 5월 말 기준 이동전화서비스 가입자는 6천729만명. 이중 MVNO 가입자는 809만명으로 전체 시장의 12%다. SKT는 41%, KT와 LG유플러스는 각각 26%와 20%를 차지하고 있다.

MVNO는 과점체제가 고착화한 이통사 시장의 경쟁구조를 흔들기 위해 '반값 통신'을 내세워 출범했다. 대부분은 영세 사업자다.

새 MVNO 사업자가 된 국민은행은 기존 알뜰폰 고객보단 대형이통사 고객을 공략할 계획이다. 집도 차도 사지 않지만, 휴대전화만큼은 사서 쓰는 이른바 '유스(Youth) 고객'이 최우선 타깃이다.

고객의 경험에 주안점을 둔 서비스를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복잡한 요금제 대신 하나의 요금제, 가족 할인 이상의 광범위한 결합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365일 24시간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비대면으로 개통도 가능하다. 국민은행의 알뜰폰은 국민은행 고객만 가입할 수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 기계보단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서비스 자체를 고객이 혁신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 중이다. 미래의 국민은행 고객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알뜰폰은 이통사가 깔아놓은 인프라를 은행이 빌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다. 그간 시중은행들은 토스와 같은 송금업체나 결제업체, 그리고 인터넷전문은행에 인프라를 빌려주며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주객이 바뀌었다.

이미 해외에는 성공사례도 있다. 일본의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은 지난해 말에 제4의 이동통신사가 됐다. 현지 최대 통신사 도코모의 망을 빌려 MVNO에 뛰어들어 1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블록체인 사업까지 하는 라쿠텐의 전체 고객이 1억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MVNO 가입자 비중은 1%대에 불과하지만, 일본 정부가 13년 만에 새 통신사 인가를 금융사에 내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부에서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범운영을 거쳐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제공되는 10월부터 행원들이 소위 '폰팔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은행은 기우라고 강조한다. 알뜰폰 개통 절차가 100% 비대면으로 구축되는 데다 수익성에 방점을 둔 사업이 아닌 만큼 행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윤 회장은 임원회의에서 "말로만 하는 혁신은 의미가 없다. 당장의 수익이 안 나도 일단 실행하라"며 알뜰폰 사업의 시작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허인 국민은행장도 하반기 주력사업으로 알뜰폰을 꼽으며 고객이 더 나은 경험을 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산업 간 협업의 허들을 낮춰준 금융당국의 기대도 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뢰에 기반한 은행이 통신업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첫 기회를 부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모바일금융의 전문성이 더 커지고, 이종산업 간 협업의 혜택이 국민의 체감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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