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채권시장에는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이제는 옛말 수준의 취급을 받는다. 중앙은행에 맞선 시장 참가자들이 더 달콤한 과실을 얻어내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1.50%로 인하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는 예정된 수순이었으나 그 시기는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 예상보다 빨랐다. 7월보다는 8월 인하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도 7월 금리 인하가 단행되자 "시장의 승리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채권시장 최전선에 있는 딜러 중에선 7월 인하에 베팅한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이 한은의 금리 인하를 압박했던 결과물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가시권에 들어온 건 최근 한 두 달 사이지만, 채권 금리는 작년 하반기 이후 계속해서 떨어졌다. 올해에는 국고채 3년물뿐 아니라 30년, 50년 등 초장기물 금리까지 기준금리를 밑도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하는 데 여념이 없던 중앙은행이 결국 두손 두발을 든 셈이 됐다. 여기에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7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시장과 인식의 갭이 크지 않도록 충분히 교감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의 승리로 기록될 만한 금통위 결과였지만, 시장은 아직도 배가 고픈 듯하다. 채권 금리는 7월 인하에도 여전히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초장기물 역시 기준금리 밑에 있다. 국고채 금리는 역사상 최저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국고 3년과 10년 금리는 전일 각각 1.321%, 1.465%에 거래를 마쳤다. 역사상 최저점인 국고 3년 1.20%, 10년 1.36%에서 각각 13bp, 10bp 차이에 불과하다. 시장은 연내 추가 금리 인하에 베팅하고 있다.

'밀림(down)의 왕은 사자(buy)', '백만밀사', '취롱불패 불신지옥' 등 신조어가 쏟아진다. 채권을 사지 않으면 결국 손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장 수급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연기금을 제외한 모든 주체가 채권을 사고 있다. 특히 은행의 활약이 돋보인다. 은행권은 상반기에만 국내 채권을 30조원 넘게 순투자했다. 시중 자금이 예금에 몰리면서, 그 자금이 다시 채권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단기물 투자에도 적극적이라 시장에 미치는 체감적 영향은 더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채권 투자 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 하락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채권 딜링룸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금리 하락 가속화는 우리 경제의 그늘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시장 예상 수준인 1.1%로 나왔음에도 금리는 하락 일변도다. 정부 주도의 일시적 호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은이 제시한 성장률 전망치 2.2%를 달성하려면 3분기와 4분기 모두 전기 대비 1.0%에 가까운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 수출과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하방 위험은 가늠조차 안 되니 달성하기 정말 어려운 목표라고 생각된다. 정부와 여당이 추가경정예산안 국회 통과에 사활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이 금리를 인하했으니 재정과 통화 정책조합(폴리시믹스)을 통한 경기 대응 노력을 가속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호소가 이른 시일 내 먹힐 것인지 주목해야 할 때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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