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금리연계형 파생금융상품 사태를 두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추종하기 바쁜 국내은행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 달래기에 급급한 은행이 여전히 글로벌 IB의 시장전망을 상품판매 배경으로 지목하자 투자자들의 허탈감도 더 커지는 모양새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 가입한 투자자 A 씨는 지난 20일 지점을 찾아 자신에게 상품을 권한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허탈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상품이 과거 100% 조기상환된 적 있는 상품 판매 경험을 토대로 판매됐고, 고객들의 수요에 의해 판매됐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고객들이 지속해서 금리연계형 상품을 만들어달라고 해 상품을 팔았다는데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시장 예측에 관해서도 설명하는 데 우리은행의 전망은 없고 모두 글로벌 IB가 언급한 예측치를 제시해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만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작년까지 1조원이 넘는 금리연계형 파생상품을 판매했다. 이 상품은 하나금융투자 등이 발행한 미국과 영국 금리연계상품으로 2017년에만 2천500억원, 2018년에만 9천억원 가까이 팔렸다. 해당 상품은 만기 구간별 수익률에 따른 조기상환이 가능한 구조라 대부분 손실 없이 상환됐다.

당시엔 전 세계적으로 금리연계형 상품이 유행이던 시기였다. JP모건과 소시에테제네랄 등이 2016년 무렵부터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눈에 띄게 금리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들이 사라졌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중심으로 수천억 원의 상품이 판매되자 일부 운용사에서는 시장 위험 헤지를 위해 반대 포지션을 찾기도 했다.

B운용사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글로벌 IB의 움직임이 달라졌는데도 우리만 특정 기초자산에 쏠림현상이 발생했다"며 "반대 포지션으로 헤지한 곳과 중간에서 상품 설계 다리를 놓은 전문 계약직만 큰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여전히 글로벌 IB의 시장 전망치를 상품 판매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JP모건과 HSBC 등 글로벌 IB가 내다본 독일 국채금리 전망 평균치가 올해 3분기 0.40%, 4분기 0.49%라고 설명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나 NH투자증권 등 국내외 IB의 특정 보고서도 판매 근거로 활용 중이다.

우리은행 한 PB는 "그래도 당행의 전망보다는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이 이렇다고 설명하는 게 투자자들을 더 안심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며 "본점 차원의 매뉴얼에 따른 응대밖에 할 수 없지만 수억원을 잃은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고 죄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이번 DLS 사태로 금융권 안팎에선 글로벌 은행을 추종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따라 하기 급급했던 은행들의 현주소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웰스파고와 같은 핵심경영평가지표(KPI)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DLS 사태가 비이자수익에 목맨 은행의 비정상적인 영업관행에서 나왔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번 DLS 사태를 비껴간 은행들은 이미 KPI 제도에 변화를 주고 있는 곳들이다. IBK기업은행은 오는 2020년부터 급여 이체를 KPI 항목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신한은행은 고객 수익률이 KPI 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0%까지 확대했다.

한 시중은행 WM담당 임원은 "이번 DLS 사태는 은행권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큰 블랙스완"이라며 "유령계좌 사태로 다시 태어난 웰스파고처럼 각행에 걸맞은 WM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역량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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